항목 ID | GC0071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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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柑橘農業協同組合翰林翰京支所 |
영어음역 | Gamgyul Nonghyeop Hallim Hangyeong Jiso |
영어의미역 | Jeju Citrus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Hallim and Hangyeong Branch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1232-1[명랑로 1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 소속 지소.
[개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인 농민이나 중소 상공업자, 일반 소비 대중들이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에 입각하여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물자 등의 구매·생산·판매·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조직 단체를 말한다.
[설립목적]
1965년부터 행정 당국이 감귤 주산지 조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한 이후, 한림읍에서도 감귤 재배 붐이 조성되면서 재배 면적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1965년 중반에 식재한 감귤 나무를 수확하는 등 감귤 주산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나 재배 기술, 생산 자재 확보, 판매 등 여러 부문에서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71년 9월 21일 제주시지소가 설치되자 한림읍 지역의 농민과 조합원들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를 하였고, 실질적인 도움도 있었다.
하지만 제주시지소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 교통이나 이용 상의 불편이 뒤따라 한림 지역에도 사무소를 유치하여 편익을 도모하자는 여론이 선도 농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변천]
1. 지소 연혁
1973년 5월 한림출장소를 설치하고 1974년 11월 선과장을 매입했다. 1983년 4월에는 사무실을 신축, 이전하였고, 1983년 5월에는 지소로 승격이 되었다. 1987년에는 농산물 집하장을 신축하고, 1990년 10월에는 신용 사업을 실시하였다.
1995년 1월에는 공제 사업을 실시하였다. 1997년 7월에는 사무소 명칭을 한림한경지소로 변경하고, 사무실을 신축,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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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 한림한경지소 역대 지소장 및 중점 추진 사항
2. 출장소의 설치
1973년에 대의원인 오규태, 고용하, 백장길를 중심으로 지역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출장소 설치를 추진한 결과, 조합은 한림출장소 설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1973년 5월 19일에는 사무실을 임차하여 한림출장소를 개소하였다.
임차 사무실은 오규태 소유 건물이었으나 무상으로 임대해 주어 조합이 큰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초대 출장소장으로 좌기창이 부임하였다.
3. 사업 기반 확립 시기
출장소 설치 초기에는 조합원 및 출자금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 조직 확대를 도모하였다. 사업의 수행과 조합원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기본 시설이 갖추어져야 하므로 감귤 출하를 위한 작업장과 농자재 보관 등에 쓰일 창고 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1974년 11월 27일 북제주군 한림읍 한림리 소재의 경지 991㎡, 건평 400㎡의 창고를 매입하여 창고 겸 선별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감귤 선별 작업은 손으로 이루어졌고, 나무 상자에 포장을 하였다.
손 선별보다 능률적인 방법으로 선별채(가로, 세로 약 1m의 플라스틱 판에 구멍을 뚫어 구멍 크기별 7매를 한 조로 하는 선별 시스템)가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사용상 불편이 많아 사장되었다.
좌기창 출장소장은 선별채에 착안하여 보다 능률적인 선별 방법으로 합판에 구멍을 뚫어 경사지게 조립한 뒤, 감귤을 부어 크기별로 선별되는 원시적 선과기를 제작하여 상당한 기대 속에 사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말경 한국화학장치(주)로부터 소형 선과기가 도입되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상당한 금액의 제작 비용을 손실하기도 하였다.
역대 사무소장들은 판매 사업 위주로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판매 사업에 관한한 지역 내 다른 경쟁 기관보다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면서 판매 사업의 전통을 세웠고 현재도 감귤 판매 사업 물량 점유 면에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4. 지소 승격과 사무실 신축
1973년 출장소 설치 이후 10여 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합원과 조합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꾸준한 발전을 거듭한 결과, 1980년대에 들어서는 출장소 기능으로는 조합원의 욕구를 해소시키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17㎡ 내외의 임차 사무실을 전전하느라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사무실 신축과 함께 지소 승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대의원이 중심이 되어 사무실 신축과 지소 승격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83년 4월 29일 북제주군 한림읍 한림리의 370㎡ 부지에 단층 190㎡의 사무실을 신축, 준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 1일자로 지소로 승격되어 지역 조합원들의 숙원이 풀렸고, 조합원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봉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대 지소장으로 정인생이 부임하여 지소를 이끌었다.
5. 1985년 제8호 태풍 ‘키트’의 내습
지소 승격 후 2년이 지나면서 지소 업무가 겨우 안정되어 갈 무렵인 1985년 8월 9일 엄청난 폭우를 동반한 제8호 태풍 ‘키트’의 내습으로 한림지소는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였다.
하천을 끼고 저지대에 위치한 창고에 홍수의 범람으로 물이 차 선과기가 파손되고 창고 안에 주차 중이던 화물 자동차가 침수, 파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고 안에 보관 중이던 농약이 하류인 한림천으로 떠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선과기 파손, 자동차 파손 등은 자체 수습이 되었으나 농약이 유실됨으로써 한림항 수질 오염 의혹이 제기되면서 인근 어촌계에서 한림항에서 양식 중이었던 소라의 폐사가 농약 오염 때문이라는 민원이 발생하였다.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합 차원에서 전 사무소의 직원들을 동원, 지역 조합원들의 협조를 얻어 한림항으로 떠내려간 농약을 수거하게 되었고, 이 와중에 어촌계에서는 소라 폐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 왔다.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인생 소장은 어촌계 관계자와의 협상을 통하여 가까스로 합의를 하였다. 당시 소라 폐사 원인이 농약 오염에 의한 것인지, 담수와 토사 유입으로 인한 것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6. 농산물 집하장 신축과 판매 사업의 확대
1980년대 전반기에 들어서 지역 내 감귤 생산량이 급증하고 판매 사업 물량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기존 선별장 규모로는 물량 처리에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기존 선별장의 진입로가 좁은 데다 급경사지여서 경운기 진입 시 사고가 빈발하고 수송 차량 진입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집하장(선별장)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87년 5월 29일 북제주군 한림읍 동명리의 부지 2,880㎡을 매입하고, 1987년 12월 18일 건평 512㎡의 집하장을 신축함으로써 조합원들의 불편을 해소하게 되었다.
1983년도 지소가 개소된 후 83년산 감귤 39만 4,504상자(한 상자당 15㎏), 84년산 16만 1,529상자, 85년산 34만 2,739상자, 86년산 25만 4,957상자, 87년산 44만 7,904상자, 88년산 33만 7,822상자가 계통 출하되었다.
당시 노지 감귤 운송 체계는 감귤 상자를 화물 트럭 4.5톤 차량에 낱개로(통상 410상자 적재) 실은 뒤 밧줄로 결박하여 선박으로 수송하던 시기였으며, 지금처럼 컨테이너 용기도 없어 부두 노조원들이 직접 차량에 옮겨 공판장, 도매 시장으로 운송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때 조남수 지소장이 부임하여 조합과 운송 계약 업체인 대한통운의 선박만으로는 수송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애월항에서 일반 상인과 개인 출하 감귤을 전문적으로 수송하는 ‘한일호’를 이용하여 서울중앙청과에 8,300여 상자를 출하하기도 했다.
농가 수취 가격보다는 물량 처리가 관건인 해였던 만큼 지소장의 적절한 판단으로 타 지역 감귤 재배 농가보다 지역 농가에게 많은 도움을 줌으로써 조합 판매 사업이 확대되는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다.
7. 신용 업무 실시
농협법 개정으로 특수 조합도 신용 업무를 실시할 수 있게 되자 한림지소도 신용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농민 조합원에 대한 봉사 체제가 확립되었다.
신용 업무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인근 계통 기관의 동의를 얻는 일이었는데, 이때 지역 전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일이 잘 처리되었다.
8. 사무소 명칭 변경 및 현 사무실 신축
사회의 발전과 조합원들의 생활 수준 향상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농업용 화물 차종을 위주로 한 자가용 보유 조합원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사무실을 찾는 조합원들의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려워지게 되었고, 신용 업무 실시 이후 사무실이 협소해지자 사무실 확장과 주차 공간 확보가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로가 신설되어 지역의 요지로 부각된 선과장 부지에 사무실을 신축,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때 지소장과 단지 협의회장이 직접 순회하며 홍보를 한 결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합원들의 정성 어린 뜻이 모아져 사무실 신축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경면 지역 조합원을 중심으로 사무소 명칭 변경 문제가 제기되어, 사무실 신축과 사무소 명칭 변경을 함께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97년 7월 1일 사무소 명칭을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 한림지소’에서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 한림한경지소’로 변경하게 되었다.
또 1997년 7월 24일 한림읍 한림리 83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780㎡의 건물을 신축하고 사무실을 이전함으로써 이 지역 감귤 재배 농민 조합의 전당으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1. 구매 사업
1983년 지소 승격으로 독립 회계를 실시하여 2억 6,100만 원의 사업 실적을 올린 이후 1980년대 말까지 완만한 성장을 거듭하여 1990년도에는 8억 7,100만 원의 실적을 달성함으로써 1983년 대비 333%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1990년대에는 사업이 급신장하게 되었다.
지소 승격 후 16년이 지난 1999년도에는 37억 500만 원의 실적을 달성함으로써 1983년 대비 1만 4,195%, 1990년 대비 425%에 달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는 감귤 재배 면적이 확대되면서 농약, 비료 사용량이 증가하고 감귤 출하용 고판지 상자의 안정적 수요에 의한 것이었다.
1998년도와 1999년도를 고비로 비가림 감귤 재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하우스 시설 자재의 수요가 급증하였으며, 최근 친환경 농업 구현에 따라 농약, 비료 사용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다.
또한 비가림 감귤의 판로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비가림 하우스 시설 투자가 격감되면서 자재 수요도 크게 감소하여, 기존 주요 품목을 위주로 한 사업의 안정적 유지는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제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친환경, 고품질 감귤 생산을 위한 농용 자재를 확대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 추진함으로써 생산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하며, 사업의 안정적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될 시점이다.
2. 판매 사업
판매 사업 또한 1983년도 9억 5,800만 원의 사업 실적을 올린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여 1990년도에는 67억 8,400만 원의 실적을 달성하였다. 1997년도에 152억 3,300만 원의 실적을 올린 것을 정점으로 감귤의 풍흉 및 가격 형성에 따라 사업량이 큰 폭으로 증감되는 추세이다.
1994년부터 1998년 사이의 5년 동안 연속 100억 원 이상의 사업 실적을 유지해 왔으나 1999년도에는 유래 없는 감귤 값 폭락으로 실적이 100억 원에 못 미침으로써 조합 사업의 부진뿐만 아니라 농민 조합원의 어려움도 컸다.
이러한 전철을 거울삼아 농가 소득 증대와 조합 사업 발전을 위해 과잉 생산 체제를 적정 생산 체제로 전환시키고, 고품질 전략과 소비 확대를 위한 수출 전략, 도매 시장 위주에서 대형 유통 매장으로 변화되고 있는 유통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나가고 있다.
3. 신용 사업
1990년 10월 16일 신용 업무를 시작한 첫해의 예수금은 잔액 기준 18억 5,700만원이던 것이 1998년도 72억 9,700만 원, 1999년도 71억 3,600만원으로 완만한 성장이 이루어졌으나 1999년도 이후 1998년도 대비 역조되는 등 예수금 신장이 침체기에 빠졌다.
이는 주요 예금 고객인 손도 농가 조합원 중심으로 비가림 감귤 재배 시설에 막대한 자금 투자가 이루어짐으로써 여유 자금이 시설 투자 자금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침체 현상은 앞으로도 시설 투자 자금 회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우려가 있다. 이에 반하여 대출은 1991년에 평잔 기준 13억 900만 원이었으나, 1998년도에 69억 700만 원, 1999년도에 87억 1,000만 원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증가되는 추세이다.
이는 1998년도와 1999년도에 실시된 비가림 시설 등에 대한 정부 지원 사업인 농어촌 구조 개선 사업에 따른 정책 자금이며 대출금의 증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4. 공제 사업
1995년도 공제 사업 실시 원년에는 그 실적이 2억 8,000만 원이던 것이 1999년 20억 5,000만 원으로 5년 만에 732%의 실적을 달성하여 꾸준한 신장 추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농민 조합원에 대한 보장 혜택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공제 사업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조합 경영 면에서도 공제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어 앞으로의 비약적인 사업 신장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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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 한림한경지소 사업량 연도별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