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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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安氏 |
영어음역 | Sunheungan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수도·안득경·안수억을 입향 시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시조 안자미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흥령현(興零縣)[순흥의 별칭]에 정착 세거하였으며 신호위상호군 (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은 순흥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안자미의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영화(安永和) 등을 파조로 한 3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영유의 손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인 안향이 있다. 안영화의 현손으로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등을 지은 안축이 있다. 순흥안씨는 조선 중종 때부터 명종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다. 근대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하르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이 유명하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였던 안창남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등이 있다.
[입향경위]
① 안수도(安秀道)는 시조 안자미의 13세손으로 1498년(연산 10)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고한 선비들이 참변을 당하자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애월읍 납읍리에 낙향 입도하여 후진 교육에 힘썼다.
② 안득경(安得敬)은 시조 안자미의 10세손으로 1401년(태종 1)에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이방번·이방석 두 왕자가 살해되는 등 골육상잔이 벌어지자 정치에 환멸을 느껴 한경면 청수리에 낙향 입도하여 그곳에 서당을 열어 후진 교육에 힘썼다.
③ 안응조(安應祖)는 시조 안자미의 14세손으로 1625년(인조 3)에 인조반정에 연루되어 제주에 유배되었다. 적거 생활 중에 후진 교육에 힘쓰다 조정의 부름을 받아 출륙하였으나 아들 안운남(安雲南)을 제주에서 살게 하여 인맥을 이루었다.
④ 안수억(安壽億)은 시조 안자미의 17세손으로 1610년(광해군 2)에 임진왜란으로 가세가 기울자 제주에 낙향 입도하였다.
[현황]
제주도에 거주하는 순흥안씨는 한림공파(翰林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참찬공파(參贊公派) 그리고 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