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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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1100道路 |
영어음역 | 1,100 Doro |
영어의미역 | 1,100 Road |
이칭/별칭 | 제2 횡단 도로,국도 99번 도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로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로터리에서 한라산 서쪽 해발 1,100m를 정점으로 하여 서귀포시 중문동 일주 도로 사이에 있는 도로.
[개설]
1100 도로는 총 35.09㎞에 이르며, 제주시 구간은 14.2㎞, 서귀포시 구간은 15.99㎞, 구 북제주군 구간은 4.90㎞이다. 중용 구간은 1,550m로 오라 로타리에서 신제주 제성 마을 사이에 있는 도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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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100 도로현황
[명칭유래]
제주시와 중문을 연결하는 도로이며 제99호선이라 칭한다. 이는 국도로 관리될 때의 칭호이며, 5·16 도로에 이어 한라산을 횡단한다고 하여 제2 횡단 도로라고 칭하고 있다. 또한 1,100고지를 최고로 하여 가로 지른다하여 1100 도로라고 명명하고 있다.
[제원]
제원의 경우 모든 구간이 다 일정하지는 않다. 총 35.1㎞구간에 폭은 6~9.6m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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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100 도로 공사 내용과 제원
[건립경위]
제주의 산악도로는 예로부터 주민의 방목과 산림 벌채 등을 위하여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에 일본군이 대미 결전의 전초 기지로서 20만 대군을 한라산록에 주둔시켰는데, 이들 일본군은 군사 행동을 위하여 물이 있는 곳을 골라 도로를 개설하였다.
당시 일본군이 건설한 산악 도로는 해발 900m 한라산 국유림 지대인 어승생 수원과 어승생봉을 중심으로 한라산록을 띠를 두르듯이 만들어 놓았다.
일본인들은 이 도로를 하찌마끼도로[머리띠란 의미]라고 하였는바, 서쪽으로는 지금의 한밝교~영실을 거쳐 노루봉 뒤 영실 분기점인 법정악에 이어졌고, 동쪽으로는 수악교 상류와 논고악, 다시 성판악에서 수장악·관음사·천왕사로 이어졌다.
한라산 서부 횡단 도로로서 본격적으로 건설에 착수한 것은 1968년 7월 정부가 폭력배를 일제히 소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때 잡힌 폭력배들을 교화하기 위해 국내 각 건설 현장에 배치, 노역을 시켜 형벌을 면제해 주었는데, 제주에도 500명이, 이른바 국토 건설단이란 이름으로 배치되었다.
이들은 현재의 어승생 저수지 북쪽에 천막을 쳐서 격리 수용되어 도로 건설에 투입되었다.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구자춘은 이 도로 건설을 위해 측량반을 독려하여 직접 밀림속을 수십회 오가며 노선을 정하였다.
건설 단원들은 측량이 끝나는 대로 노선을 따라 나무를 베고 정지작업에 투입되었으며, 해발 1,100m까지 오르내리는 급경사를 완만하게 우회시키는 어려운 공사여서 착공 6년만인 1973년에야 완공되었다. 도로 너비 10m, 포장 너비 7m의 2차선 도로로서 총 공사비 6억 4200만원이 소요되었다.
[변천]
1100 도로는 1969년 4월 30일 국도로 지정된 뒤 1974년 6월부터 유료 도로가 되었다가 1982년 12월 31일 유료 도로에서 폐지되었는데, 그 동안 통행한 자동차 대수는 77만 5240대였고 징수된 요금은 2억 4641만 7000원이었다.
당초 이 도로 포장법은 침투식 공법이었기 때문에 노면상태가 좋지 않고 파손기간이 짧아 20억 원을 들여 아스콘 공법으로 덧씌우기 공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100 도로는 산남 서부지역과 직결되는 도로이긴 했으나 해발고도가 높아 화물 자동차가 운행하기는 어려웠고 관광 자동차도 대형버스는 운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영실을 거쳐 등산하는 관광객들은 불가피하게 이 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 도로가 개통되면서 한라산 5개 등산로 가운데 어리목과 영실 등산로의 이용률이 전체의 90% 이상 되었다. 1100 도로 개통 이전까지 한라산 등산은 주로 관음사 코스와 성판악 코스였다.
[현황]
1100 도로는 우리나라 국도 가운데 해발 높이가 가장 높아 이 도로를 따라 99곡, 어승생악, 제주축산개발사업소, 천마목장, 천왕사, 영실 등 경승지가 연결되어 있고 겨울철 설화(雪花)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교통량이 줄어들면서 1100 도로에서는 각종 이벤트 등이 일어나고 있다. 한라산 1100 도로를 자전거로 질주하는 ‘2007 제주 1100 도로 힐클라임 챌린지’대회가 2006년에 이어 2007년 6월 30일에 열리기도 하였다.
제주시는 국도에서 지방도로 전환된 도로의 표지판을 일제히 정비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면서 2006년 7월 1일을 기해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이 제주도로 편입되면서 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하던 국도가 지방도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제주시는 사업비 1억 2300만 원을 들여 국도에서 지방도로 전환된 시·군도, 농어촌도로 등 406곳에 대한 도로 표지판의 문구 정비를 완료했다. 이를 노선별로 보면 일주 도로 197곳, 중산간도로 115곳, 5·16도로 29곳, 1100 도로 22곳, 평화로 43곳 등 406곳이다.
1100 도로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모노레일 설치이다. 한라산 모노레일카는 2004년 11월 한국모노레일(주)에서 1100 도로 일대 22.3㎞구간에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사업을 제안한 이후 2005년 1월 제주도에서 추진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존 도로의 일반적 사용을 제한한 ‘서비스도로’로 용도를 전환하는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며, 접근성 용이에 따른 이용 촉진으로 또 다른 자연 훼손이라는 문제점도 제기 되었다.
충남대학교 연구진이 기초 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1100 도로 대체교통수단으로 투어버스와 자기부상열차, 노면전차, 모노레일 등을 종합 비교한 결과 모노레일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모노레일카 설치가 한라산의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다 현재 시급한 사안이 아닌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교통체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도에서는 유보하기로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07년 3월 제주특별자치도 2단계 제도개선 정부안에 삭도궤도사업 관련 사항을 도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권한 이양 과제로 반영되어 이러한 한라산 모노레일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국면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