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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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放送總局 |
영어공식명칭 | Jeju KBS |
영어음역 | KBS Jeju Bangsong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302-3[신대로 10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문교 |
성격 | 방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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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50년 9월 10일 |
설립자 | 정부 |
전화 | 064-740-7100 |
팩스 | 064-740-7299~7599 |
홈페이지 | KBS 제주방송총국(http://jeju.kbskorea.net)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KBS 소속 방송 총국.
[변천]
광복 당시 전국 주요 도시에는 방송국이 운용되고 있었으나 제주에는 방송국이 설립되지 않아 정상적인 방송 청취를 할 수 없었다. 광복 직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주도민들은 정국 판단과 생활 안정을 위한 새로운 정보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제주도 당국은 1946년 11월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에 제주방송국 설치를 진정했으나 방송 장비를 확보할 수 없어 미루어 오고 있었다.
조선방송협회는 1947년 일본으로부터 방송 장비를 수입하고, 방송국 설치를 위한 현지 조사차 같은 해 10월 30일 이정섭(李晶燮) 회장, 한덕봉(韓德奉) 기술국장, 김봉열(金奉烈) 목포방송국장, 이태구(李太九) 목포방송국 방송과장 일행이 제주에 내려와 현안 문제를 확인하고 대책을 세웠다.
현지 조사반 일행은 유해진(柳海辰) 제주도지사와의 협의를 거쳐 방송 장비는 방송협회에서 제공하고 청사와 관사는 제주도에서 확보하기로 합의했으나, 4·3사건과 5·10총선거 후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늦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게 되면서 후방 안전 기지인 제주에 방송 보루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1950년 7월 8일 전국에 비상 계엄령이 내려지고, 7월 22일 언론·출판특별조치령이 공포되어 방송국은 사실상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관장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정부는 8월 18일 부산으로 천도했고, 제주에는 1만여 명의 피난민이 들어와 식량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수시로 변하는 전황을 알려 북한군을 물리치려는 국민 의지를 결집시켜야 했고, 제주 지역에서는 주민과 피난민들을 위문할 전파매체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어, 1950년 9월 10일 KBS 제주방송국 라디오 방송이 개국하게 되었다.
제주방송국은 제주시 이도2동 제주무선국 수신소 건물(60평)을 임대하여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호출부호 HLKS, 주파수 1,080㎑, 출력50w로 전파를 발사하여 남한에서 11번째 지방방송국으로 개국했다. 개국 당시 가청권은 제주시 중심 지역에 한정되었고, 라디오 보유 대수는 2백여 대에 지나지 않았다.
방송 장비는 차츰 보강되었다. 4·19혁명 후인 1960년에는 체신부 자산이었던 부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이양받아 스튜디오를 개수하고 아나운서 부스를 만들었다. 1961년 3월에는 주파수를 800㎑로 변경하고, 출력을 1㎾로 증강했다. 60m 철탑을 건립하여 수직 안테나로 무지향 송신을 하게 되자 해외 방송의 혼신 등이 없어져 방송 상태가 한층 개선되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정은 신문 통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하였으나 대조적으로 방송의 문호는 개방하여 상업방송 시대의 문을 열었고, 국영방송의 시설 확장에 힘을 기울여 난청지역을 해소해 나갔다.
KBS 제주방송국은 제주 남부 지역 난청지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1962년 1월 서귀포 라디오중계소를 개소하고 호출부호 HLCF, 출력 1㎾, 주파수 1,240㎑로 방송을 중계했고, 1971년 11월에는 고산중계소를 개소하여 제주 전역의 난청구역을 완전히 해소하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1970년 6월에는 체신부의 마이크로웨이브 통신망의 개통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중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국영방송인 KBS는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라 1973년 3월 3일 한국방송공사로 발족되었고, 공사로 개편된 제주방송국은 기구 개편을 단행하여 2부 3과 3소 체제를 1980년 방송공영화 이전까지 운영했다.
라디오 방송만을 운영하던 KBS 제주방송국은 1971년 4월 20일부터 TV방송을 시작했다. KBS-TV의 제주 지역 방송은 로컬 방송에 앞서 전국 프로그램을 중계 방송했다. 제주방송국은 제주시 봉개동 견월악에 건물(39평)과 40m 높이 송신탑을 세우고 채널 6, 영상출력 5㎾, 음향출력 1㎾로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난시청 지역이 많았으나 1978년까지 서귀포중계소 금악·고내봉에 무인 TVR을 설치하여 난시청 지역을 해소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KBS와 MBC는 모두 공영방송 체제로 전환되었다. 10월에는 제주시 연동 부지 1,3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1,250여 평의 새 청사를 완공하고 방송시설을 현대화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전국과 동시에 컬러 TV방송을 실시하였고 2TV와 교육방송인 3TV도 이듬해 상반기부터 제주 지역에 송출했다.
1983년 9월 10일에는 KBS-FM을 개국하여 제주 지역에 음악방송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KBS-1FM과 2FM 프로그램을 혼합 편성하여 청취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내용을 제공했다.
1986년에는 조직이 개편되어 전국 7개 지역국과 함께 총국으로 승격되고 하부 조직으로 4국 12부를 두는 대기구로 확대되었다. 1994년에는 KBS 직제와 인사규정이 대폭 개정되어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명예퇴직제를 확대했다. 이러한 인사제도의 개편으로 제주KBS 사원 중에도 부장 승진에서 탈락하는 사원이 있었고, 명예퇴직하거나 다른 지역 방송국으로 이동, 발령되는 등 교류 인사도 활발해졌다.
KBS 대조직 체계는 2004년 8월 축소 개편되어 제주총국의 경우 4국 1소 1담당에서 4팀 1소 1실로 축소되었다. 개편된 조직은 편성제작팀, 보도팀, 기술팀, 총무팀, 송신소, 심의실이다.
최근에는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뉴미디어에 대비해 2004년 12월 30일부터 디지털방송을 시작했고 지상파 DMB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사업과 업무]
KBS 제주방송총국의 지역 프로그램 편성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라디오방송 시대에서 TV방송, 음악방송으로 채널이 확대되면서 지역 프로그램도 다양화되고 로컬 비율도 높아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제주 지역의 미래 비전, 국제화, 산업발전, 환경가꾸기 등의 주제를 프로그램 편성의 역점 분야로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해마다 연초에 채택한 방송 지표와 특집 프로그램 등에 잘 반영되고 있다.
제주KBS의 로컬 프로그램은 주간 전체 방송 시간에 비해 평균 TV 6.5%, 라디오 11.3%, FM 17.0% 수준으로 제작해 왔다. 그 가운데 제1라디오의 로컬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급격하게 줄었는데 이는 제주 지역에 KBS 제2라디오가 개국되어 로컬 프로그램을 분산 편성한데 따른 현상이다.
제주KBS는 정규 프로그램 이외에 특집방송을 수시로 편성하고 있다. 해외특집 프로그램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감귤, 관광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감귤산업의 해외특집은 ‘제주감귤 캐나다 상륙의 현장’, ‘일본의 감귤산업’, ‘일본 감귤 21세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스페인 감귤 품질로 승부한다’ 등을 방송했다.
관광분야로는 싱가포르, 홍콩, 하와이, 괌, 사이판을 현지 취재한 ‘태평양 관광시대’ 5부작을 방송하였고 이어서 호주, 홍콩을 취재한 ‘환태평양 관광기획’ 3부작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하와이를 현지 취재한 ‘세계의 메가리조트’를 방송했다.
보도방송으로는 뉴스와 특집방송이 있다. 로컬 뉴스는 TV의 경우 1일 4회, 전국 참여 3회가 있고, 라디오 뉴스는 1·2라디오 총 8회로 편성되어 있다. 보도 기획 프로그램 가운데는 ‘환경스페셜’로 한라산, 지하수, 해양, 토양 등의 오염 현상을 고발하고 대안 제시에 역점을 둔 특집들이 많았다.
라디오방송은 주간 프로그램 이외에 향토문화를 소재로 한 특집 프로그램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의 호응도를 높였다.
[활동사항]
제주KBS는 해마다 공익 캠페인과 문화행사를 열어 시·청취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행사에는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연례행사와 단회성 행사가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는 제주 지역의 산업·문화·체육·레저 등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장기간 개최하는 정례행사로는 ‘제주감귤축제’, ‘유채꽃 큰잔치’ 등이 있다.
[현황]
2004년 8월 기구 축소에 따라 기존 국체제가 팀제로 축소되면서 간부 보직도 대폭 줄어들었다.
2006년 12월 현재 간부는 총국장 김용관(金容寬), 편성제작팀장 민승식(閔丞植), 보도팀장 김석호(金錫浩), 기술팀장 김황진(金晃進), 총무팀장 고세진(高世震), 송신소장 조병래(趙炳來), 심의실 심의위원 김세균(金世均)·김부일(金富一)이다.
역대 국장은 이원영(李元英)·이천탁(李天鐸)·김인지(金仁志)·이태구(李太九)·양창현(梁昌鉉)·김석모(金錫模)·지삼환(池三煥)·박중서(朴重瑞)·백형기(白亨基)·김화룡(金化龍)·오세백(吳世伯)·이완규(李完圭)·송영지(宋英智)·김화룡(金化龍)·서용수(徐龍洙)·이종봉(李鍾鋒)·정하룡(鄭夏龍)·박진우(朴震雨)·변형하(邊衡夏)·오길웅(吳吉雄)·정두진(鄭斗鎭)·김현국(金顯國)이다.
1986년 7월 총국 체제로 개편된 이후 총국장은 김현국·이병대(李炳大)·오길웅·김성배(金聖培)·하강일(河剛一)·정량(鄭亮)·김형준(金炯準)·이장춘(李長椿)·신일균(申一均)·한안성(韓安星)·조의진(趙義振)·김성묵(金誠黙)·윤재홍(尹在洪)·이희찬(李喜燦)이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