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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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弘化閣 |
영어음역 | Honghwagak |
영어의미역 | Honghwagak Ha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관덕로 2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나영 |
성격 | 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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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외1출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435년(세종 17)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4칸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관덕로 25] |
소유자 | 제주특별자치도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문화재 지정일 | 1993년 3월 31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
[변천]
세종 때 제주목 관아가 모두 불에 타 없어지자 최해산(崔海山)[1380~1443] 제주목사가 못쓰게 된 절의 재목과 기와로 절제사 영청(營廳) 3칸을 짓고 옛 이름 만경루(萬京樓)를 고쳐 홍화각이라 하였다. 이때 침실, 욕실, 독서방, 금당(琴堂), 정당(政堂) 등 206칸도 1434년(세종 16)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435년(세종 17)에 완성하였다.
1648년(인조 26) 11월 18일에 김여수(金汝水)[1600~1670] 제주목사가 중수를 시작하여 1649년(인조 27) 1월 8일에 완성하였다. 안무사 및 절제사의 영청으로 사용되다가 1713년(숙종 39년) 제주목사가 방어사를 겸하면서 정아(正衙)를 별설하게 되어 홍화각은 영리청(營吏廳)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772년(영조 48) 양세현(梁世絢) 제주목사가 중수하였고, 1829년(순조 29)에 이행교(李行敎) 제주목사가 개건하였으나 1940년에 헐렸다.
홍화각이 영청이라 불리게 된 것은 제주목사가 전라도관찰사의 임무를 일부 넘겨 받아 대정현감·정의현감을 지휘, 감독하여 제주도의 전권을 장악한 데서 유래한다. 또한 불에 타기 전의 관아 명칭은 만경루라 하였는데, 홍화각이라 명명한 것은 왕의 어진 덕화(德化)가 백성에게 두루 미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형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가구(架構)는 2고주(高柱) 7량(樑)이다. 공포(栱包)는 외1출목(外一出目) 이익공(二翼工) 겹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면적은 155.82㎡(47.13평)이다.
[현황]
1997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되어 1998년 7월 20일에 마친 제주목 관아터의 제4차 발굴 때 외대문, 중대문, 홍화각, 애매헌, 호고, 호적고, 우연당, 예고, 예리장방, 성내 연못, 우물 유구와 담장 터가 확인됨에 따라 18세기의 모든 관아의 배치가 확인되었다. 1999년 홍화각 및 관아와 외대문, 중대문, 연못, 담장 등이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홍화각은 탐라고각(耽羅古閣)이라 불릴 정도로 관아 중에서 뛰어난 건물이었다. 기문(記文)으로는 「고득종기(高得宗記)」와 「김진용중수기(金晉鎔重修記)」 및 「이원조중수기(李源祚重修記)」 등이 전한다. 고득종이 쓴 편액 ‘弘化閣(홍화각)’과 ‘弘化閣記(홍화각기)’가 새겨진 현판은 삼성사(三姓祠)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의 현판은 탁본하여 새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