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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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 |
영어음역 | hollye |
영어의미역 | marriage ceremon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혜숙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남녀가 혼인할 때 치르는 의례 과정.
[개설]
제주도의 전통 혼례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점이 많다. 납채(納采)와 친영(親迎)은 육지와 정반대이고 대례(大禮)와 같은 예식이 없이 신부를 곧장 신랑집에 데려간다. 즉, 신랑은 육지의 함과 같은 홍세함을 상객들과 같이 신부 집에 가지고 가서 신부측 안내자인 중방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신부는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고 신랑과 함께 신랑 집으로 간다. 신부 집은 이날 잔치를 벌인다. 결혼 다음날 신랑과 신부는 시아버지, 백부와 함께 친정집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신랑은 신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온다.
[변천]
제주도의 혼인 관행은 1950년대 중반까지는 구식 혼례, 1950년대 중반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1960년대 이후는 신식 혼례기의 정착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제주도의 혼례는 제주도의 전통적 요소에 육지부에서 시행되는 모습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1962년 제주시의 혼인 사례를 보면 연애를 하다가 형식상 중매인을 넣어 정식 청혼을 했다. 신랑 부친이 신부 측에서 사주를 받아와 택일을 하고 막편지(사주가 맞아 혼인 성사를 알리는 편지, 택일을 정식으로 통보하는 서식) 전달시 약혼식도 했다. 이바지는 따로 없었으며, 약혼 시 반지와 시계 등의 폐물을 받았다. 구식 혼례와 크게 달라진 것은 혼인식을 치르는 것이었다.
이 당시 보통은 신랑 집에서 혼인식을 치렀으나 본인들은 예식장에서 혼인식을 올렸고, 신부는 드레스를 입었다. 신랑, 신부는 택시를 이용했고, 나머지 하객들을 위해서 버스 한 대가 마련되었다. 사돈댁에 동행하는 우시도 구식 혼례보다 친척수가 늘었고, 친구들도 따라갔다.
1970년대 이후에는 신랑 집에서 혼인식을 치르는 사례가 없어지고 예식장에서 거행했다. 중매혼이 대부분 자유혼으로 바뀌고, 잔치 후 이틀 걸리던 사돈잔치가 당일 날 사돈열맹시와 겸하여 진행되었다. 신랑, 신부가 잔칫날 저녁 무렵 신혼여행을 떠나는 풍속이 생겨난 것도, 사돈잔치를 생략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가문잔치가 오전부터 하루 종일 축하객들이 방문하는 잔치로 변하여 구식 혼례에서와 그 기능이 변화되었다. 예식장에서 혼인식을 치른 뒤 ‘드라이브’라 하여 야외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놀다가 신랑 집으로 간다.
[잔치 전 의례]
대개 아들 가진 부모들이 신부감을 물색한다. 중매인은 연령이 지긋하며 동네 유지격인 남성이 주로 맡는다. 사주고람(四柱考覽) 즉 신랑 측에서 신부의 사주를 받아 궁합을 보고 택일을 한다. 신부의 혼수는 거의 없었으며 신랑 측에서 이바지를 준비한다. 이바지가 차츰 없어지면서 신부 측 부담이 증가하는 역현상이 생겨났다.
[잔치 의례]
전날의 가문잔치, 혼인 당일의 잔치, 신부 집에서의 사돈잔치와 신랑 집에서 사돈잔치까지 4일에 걸쳐 양가에서 세 번씩 합계 여섯 번 잔치를 한다.
(1) 가문잔치 : 혼인식 전날 잔치에 필요한 음식을 마련하고 나면, 저녁때쯤 해서 양가에서 각각 가문잔치가 열린다. 이 잔치의 의미는 혼인 준비에 걱정과 수고가 많은 친척이나 이웃의 고마움에 대한 사례의 뜻도 있다. 사돈집에 참석할 우시(상객), 대반, 중방 등을 정하고 신랑 집에서는 예장을 쓰는 등 최종 점검을 한다.
(2) 혼인 당일의 잔치 : 아침에 예장과 폐백을 넣은 홍세함을 마련하고 문전제를 올리고,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신랑 일행은 택일에 정해진 출행 시간이 되면 말을 타고 신부를 데리러 출발한다. 신부 집에서는 신랑 측이 가져간 홍세함을 상 위에 올려놓고 집례자가 분향, 잡식한 후 함을 개봉하여 예장을 검토한다. 예장이 접수되고 문전고사가 끝나야 신랑은 중방의 안내를 받으면서 신랑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시는 따로 우시방으로 들어간다. 신랑과 일행의 상받기가 끝나면 마루로 나와서 사돈열맹을 치른다.
신부 집을 출발하여 신랑과 신부가 신랑 집에 도착한다. 가마를 타고 간 신부는 대반의 안내를 받아 신부방으로 들어가 정해진 위치와 방향을 향해 앉는다. 향(向)은 대개 고팡(광)쪽으로 부자가 되어 잘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신랑, 신부의 상견례는 없으며 시모, 시누이, 손윗동서, 여성 궨당들이 들어와 신부에게 한복 등의 선물을 한다. 신부와 함께 왔던 신부 측 우시들도 식사가 끝나면 마루로 나와 양 사돈끼리 인사를 나누는 사돈열맹을 한다. 혼인날 저녁은 신랑 친구들과 동네 이웃, 친척들이 모여서 장구치고 노래와 춤을 곁들이면서 신랑다루기를 하며 밤을 새워 놀았다.
[잔치 후 의례]
(1) 열맹 : 잔치 다음날 아침, 신랑, 신부가 가까운 친척에게 인사 다니는 것을 말하며, ‘문안인사’, ‘올래알림’이라고도 한다.
(2) 사돈잔치 : 신혼부부와 신랑 부친 등이 신부 집을 방문하여 사돈잔치를 한다. 사돈잔치 후 부친과 친척들은 당일 돌아오고 신랑, 신부는 하룻밤 묵고 나서 돌아온다. 이날 밤도 신랑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밤을 새워 여흥을 즐기며 신랑다루기도 한다. 다음날은 신랑, 신부와 신부 부친 또는 신부 측 근친들이 함께 신랑 집을 방문한다. 신랑 집에서 사돈잔치를 한 후 신부 부친은 돌아간다.
[현황]
2005년도 제주시의 사례를 살펴보면 상견례를 한 후 신랑 측에서 택일을 한다. 신랑 측에서 신부 집에 예단의 명목으로 돈 1300만 원을 보냈다. 신부는 그 돈으로 예물을 준비하고, 화장품, 옷 등을 준비한다. 신랑은 집 장만과 혼수용품, 부신랑에게 주는 돈, 예식장 비용 등 1억 5천만 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부신랑이 결혼식 전체를 도맡아 일처리를 해 나간다. 신부 친구들은 ‘손수건을 파는’ 이벤트를 하여 돈을 마련하고 뒤풀이를 한다.
특이한 것은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육지식의 폐백이 등장하여 시행되고 있다. 예식장에서 혼인식을 마치고 식당에서 사돈열맹, 사돈잔치까지 모두 겸하여 동시에 진행한다. 잔치가 치러지는 식당에서 신랑, 신부는 인사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무렵 신혼여행을 떠나고 잔치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