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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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胡宗旦 |
영어음역 | Hojongdan (Huzhongdan) |
이칭/별칭 | 호종조(胡宗朝),고종달,광양왕(廣壤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전기 귀화한 송나라 사람.
[개설]
일명 호종조(胡宗朝)라고도 하며 제주에서는 고종달이라고 한다. 풍수사로 알려진 송나라 복주인(福州人)이고, 고려에 귀화하여 15여 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하였다.
[활동사항]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상사생(上舍生)이 되고, 뒤에 저장성(浙江省)에 있다가 상선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 예종의 후한 대접으로 1111년(예종 6) 좌우위녹사 권지직한림원(左右衛錄事 權知直翰林院)·우습유지제고(右拾遺知制誥)에 발탁되었다. 1126년(인종 4)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궁궐에 난입한 척준경(拓俊京)의 군사를 설득하여 무기를 버리게 하였다.
예종 때에 탐라에 들어와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전해지는 신비스러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탐라의 지기를 누른 다음 해로로 돌아가는데, 한라산 산신의 동생이 죽어서 된 신이 매로 변하여 돛대머리에 날아 올랐다. 잠시 후 북풍이 크게 불어서 호종단의 배를 쳐부수니 비양도 바위 사이에서 사라졌다 한다.
조정에서 그 신령스러움을 포상해 식읍을 주고 광양왕(廣壤王)으로 봉하고 해마다 향과 예물을 내려주어 제사지냈는데, 조선시대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광양왕 설화는 여러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호종단 또는 다른 인물이 지기를 눌렀다는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하나의 유형으로 간주될 만큼 옛날부터 제주의 많은 마을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탐라지(耽羅志)』를 지은 조선 효종 때의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은 “호종단은 고려에 벼슬하여 기거사인에 이르러 죽은 사람”이라 하여 그에 대한 전설은 근거 없는 말이라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