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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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輪寺址 |
영어음역 | Haeryunsaji |
영어의미역 | Haeryunsaji Archaeological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375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오성 |
성격 | 사찰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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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375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개설]
해륜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억불 정책으로 쇠퇴를 거듭하다가 1702년(숙종 28)에 제주절제사 겸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형상에 의해 훼철되었다.
[변천]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에는 해륜사와 관련해 “주성(州城) 동쪽에 만수사(萬壽寺)가 있고 서쪽에 해륜사(海輪寺)가 있어서 각각 불상은 있으나 상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을 자체에서 한 사람을 정하여 돌보게 하고 또 4명절 때면 서로 모여서 예불(禮佛)할 따름이다. 나는 말하기를 점차 오래 둘 수 없으니 곧 두 사찰을 헐어서 공해로 옮겨 세우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이형상이 만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중 「건포배은」에는 1702년 12월 20일 이형상 제주목사의 선정에 대해 도민들이 감사의 표시로 임금께 절을 올리는 모습과 신당이 불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형상의 「병와선생이공행장(甁窩先生李公行狀)」(1733)에는, “도민 700여 명이 건포에 모였는데 어찌 감히 공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냐면서 신당과 두 곳의 사찰을 불사르고 불상을 바다에 던졌다.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불과 6개월여 만에 제주 지역의 신당 129개소를 불태우고, 해륜사와 만수사를 헐어 관가의 건물을 짓도록 했다”고 나와 있다.
1939년에 이르러 승려 오이화가 옛 고려시대 사찰의 명맥을 이어 해륜사지에 해륜사를 다시 창건하였고, 지금은 용화사라고 사찰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
해륜사지는 남쪽에는 비교적 평탄한 경작지가 있고, 북쪽은 바다와 근접해 있다. 용이 살았다 하여 용연이라고 불리는 병문천과 한천 사이, 해발 5m 정도의 조그만 언덕 위에 해륜사지가 있다.
[현황]
해륜사지의 지름 50m 반경 내에는 많은 와편, 도자 편, 토기 편들이 산포되어 있다. 주위의 주택가에는 유구로 여겨지는 초석과 기단석 편들도 눈에 띄는데, 주택의 벽, 또는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다.
해륜사지에는 고려시대 미륵불로 추정되는 서자복 미륵이 남아 있다. 해륜사지의 서자복 미륵은 만수사터의 동자복 미륵과 함께 1971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