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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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女服 |
영어음역 | haenyeobok |
영어의미역 | diving suits |
이칭/별칭 | 잠수옷,잠녀옷,물옷,해녀옷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부자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갈 때 입는 옷.
[개설]
‘잠수(潛嫂)’란 바닷물 속에서 미역 소라 전복 등 해산물을 채취해내는 여성을 말하고, 이 작업과정을 ‘물질’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물 속에 잠긴다’는 뜻으로 쓰는 현재의 잠수(潛水)나, 잠수부(潛水夫)와는 다르다.
물질하는 여성들에 대한 명칭은 1970년대까지도 ‘수’·‘녜’라고 했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부터 비하시켜 사용했던 해녀를 관례로 쓰고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3년)에도 제주시 용연(龍淵) 근처 바닷물 속에서 작업하는 잠수 다섯 명을 그리고 옆에 ‘잠녀(潛女)’라고 써놓았다.
잠수옷이란 이들이 바닷물 속에서 작업할 때 입는 옷을 말한다. 이 옷의 명칭은 수옷·녀옷·물옷·물소중이·해녀옷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물옷은 몸통만 가리고 팔과 다리가 노출되는 짧은 단벌 홑옷인데, 한쪽 옆을 터서 여러 개의 끈이나 단추로 여미도록 했다.
가랑이 밑은 두 겹에 180°로 넓게 막고, 한쪽 어깨에 끈이 달려 있다. 추운 날에는 그 위에 낡은 적삼(赤衫)을 덧입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광목이 나오고 옷감이 흔해지면서 단벌 물소중이 외에 위[上衣]에는 ‘물적삼’을 입고, 머리에는 ‘물수건’을 썼다. 이 모두를 합하여 ‘물옷’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때 잠수용구로 ‘안경[水鏡]’, 해산물을 담는 ‘망시리’, 몸을 의지하는 ‘태왁’, 이외에 해산물 채취용 도구들을 사용했다. 이 옷들은 1970년대 이후 ‘고무 옷[潛水服]’이 나오기 전까지 입었다.
[변천]
해녀복은 언제부터, 어떤 모양으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노인들은 “왜구(倭寇)들의 겁탈에 몸을 지키기 위하여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한다. 이는 왜구의 침입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빈번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었으므로 신빙성이 있다.
또 왜구의 겁탈은 “밤에 몸을 허락하고 싶지 않을 때 남편이 치근대면 ‘소중이’ 두 벌을 트인 곳을 다르게 엇바꿔 입으면 좋았다.”는 경험담에 의해서도 입증이 간다.
옷에 대한 기록으로는 이건(李健)이 제주에 유배왔을(1628~1635년) 때 쓴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서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잠녀들이 알몸으로 잠수(潛水)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알몸’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의 외출과, 외출할 때 내외용(內外用) ‘쓰개’로 얼굴을 가리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로 볼 때 노출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들은 1950년대 이후의 것뿐이지만, 1703년『탐라순력도』에 흰색 옷을 입고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700년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현황]
현재는 해녀복으로 1970년대 말 이후부터 바뀐 ‘고무 옷’과 화학재료로 만든 도구들이 이용되고 있다. 이 옷을 입으면 추위를 덜 타므로 잠수 시간이 길어(1회 6시간 정도, 물소중이의 경우 30분 정도) 경제성이 높다.
그러나 오랜 시간 노동으로 저항 능력을 잃어서 많은 질병을 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허리에 맨 무거운 납덩어리 때문에 심한 허리병을 앓고 있다. 또한 고무 냄새로 두통과 구토증이 나고, 피부염도 유발되고 있다. 이런 증세들로 한때 ‘뇌선(노싱)’이라는 약이 최상의 진정제이자 처방제였으며, 지금도 투약과 치료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