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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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永燮-碑文事件 |
영어음역 | Han Yeongseobui Bimun Sageon |
영어의미역 | Han Yeongseop's Inscription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정의]
일제 시대 제주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한영섭의 죽음에 비문을 세우자 경찰이 관련 청년들을 검거한 사건.
[개설]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한영섭의 장례를 치르면서 함덕리 지역 청년동맹원들이 선동적인 깃발과 비문을 세우자, 일본 경찰이 관련자를 모두 검거한 사건이다.
[발단]
1931년 1월 15일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서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운동가인 한영섭이 도쿄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함덕리 청년동맹원들은 고향에서도 동지장으로 장사를 치르기로 하였다.
[경과]
1931년 1월 19일 한영섭의 시신이 향리에 도착했고, 청년동맹원들은 1월 21일에 한윤섭의 집에 모여서 “추도 적혁(赤革) 한영섭의 영”, “불평등한 사회를 타도하고 무산계급의 자유를 건설하려고 그대는 죽었지만 그대의 주의 정신은 동지인 우리들에게 계승되어 분투할 것이니 고이고이 진좌하라.”라는 내용을 적은 기를 만들어서 다음날 장례식에 세워놓았다.
또한 대흘리 공동묘지에서 장사를 지낼 때 장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적기가와 같은 혁명가를 제창시켰다. 송건호 등 청년동맹원들은 이보다 앞선 1월 17일 각각 30전 또는 50전을 내어서 비석을 매입하여, 표면에는 ‘동지적광한영섭기념비(同志赤光韓永燮記念碑)’, 이면에는 “차디찬 흰 빛 밑에 눌린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 뿌린 동지였다.”는 항일의식과 계급의식이 들어간 비문을 새겼다. 그리고 이 비석을 같은 날 함덕리에서 약 300m 떨어진 공동 우물 부근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세웠다.
[결과]
경찰은 함덕리에 형사들을 파견하여 3월 29일부터 청년 20여 명을 검속하여, 비를 압수하고 관련자들을 검거하여 재판에 회부하였다. 검거된 김재동은 광주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하던 중 1932년 3월 14일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