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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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末日本漁民-濟州侵奪 |
영어음역 | Hanmal Ilbon Eominui Jeju Chimtal |
영어의미역 | Pillage of Jeju by Japanese Fishermen during the Late Korean Empire Period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만생 |
[정의]
구한말 일본 어민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를 침탈한 사건.
[개설]
1883년 이후 일본 어민의 제주 침탈이 계속되자, 제주도민들은 중앙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중앙 관료들은 오히려 일본 어민들의 뇌물을 받고 이를 묵인해주었다. 불만이 쌓인 제주 주민들은 1891년 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에 내려온 중앙 관료를 배에 실어 내쫓았다.
[역사적 배경]
개항 이후인 1883년 7월 25일 「한일 통상 장정」이 체결된 뒤 일본 어민의 제주 어장 침탈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들은 대거 잠수기선을 몰고 와서 제주 바다의 밑바닥까지 훑어서 전복·해삼·해초 등을 모조리 긁어갔다. 잠녀들의 채취량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생존권을 위협 받았고, 결국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출가(出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주도민들은 계속되는 일본 어민의 어장 침투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제주 목사와 중앙 정부에 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와 협상하여 1884년 9월부터 일본 어민의 제주 통어(通漁)에 대한 잠정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어민들은 제주도 주요 포구를 무대로 불법 어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불법 어로에 그치지 않고 연안 마을에 상륙하여 주민 살상, 부녀자 겁탈, 재물 약탈, 상품의 밀매 행위 등을 자행하였다.
[발단]
1887년 8월 가파도에서 전복을 캐던 일본 어선 6척이 모슬포에 내려서 닭과 돼지를 약탈하고, 주민 이만송 등을 살상하는 일을 자행하였다. 또 1890년 5월에는 일본 어민들이 배령리에 상륙하여 도민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경과]
제주도민들은 조선 정부에 일본 어민의 침투를 영원히 금지시켜주도록 여러 차례 요청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오히려 일부 관료들은 일본 어민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의 침투를 방조하였다. 제주도민들은 이러한 일본 어민의 침탈과 만행, 또 중앙 정부의 방관에 대해, 생존권 수호를 위한 적극적 투쟁을 전개하였다.
[결과]
1891년 3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순심관(巡審官) 이전(李琠)이 내려오자, 도민들은 봉기하여 일본에 대한 제주 어업 침탈 허용에 항거하였다. 도민들은 이전을 배에 태워 내쫓아버림으로써 강력히 저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