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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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耽羅句當使 |
영어음역 | Tamna Gudangsa |
영어의미역 | Superintendency of Tamn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전기 탐라군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제주를 관할하던 직책.
[개설]
구당사는 고려 전기 주로 섬 지역을 관할하는 외직(外職)의 하나였다. 탐라구당사는 현령이 파견되는 의종대 이전까지 중앙 정부와 제주를 오가며 탐라를 관할하던 관인이었다.
구당사는 고려가 군현 단위에 외관(外官)을 상주하게 하는 995년(성종 14)보다 1년 앞서는 994년 압록도에 처음으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고려의 모든 진(津)과 도(渡)에 파견되어 업무를 관할하였다. 탐라에 구당사가 파견된 것은 1079년(문종 33)으로, 초대 구당사는 윤응균(尹應均)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구당사는 섬 지역이나 연안 지역에서 중앙정부의 여러 국가 업무를 전담하여 처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되었다. 이들은 994년(성종 13) 직후부터 집중적으로 파견되어 중앙정부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였다.
일본의 일기도(壹岐島)와 대마도(對馬島)의 도주 역시 고려의 구당관직을 겸하고 있었다. 구당사는 주로 좌천당하는 관료의 관직으로도 활용되었으나, 구당사 역임도 관 경력으로 인정받았다.
[담당 직무]
탐라구당사는 탐라에 상주 외관이 파견되는 의종대(1147~1170) 이전까지 여러 국가 업무를 전담하여 처결하였다. 『고려사』에는 1090년(선종 7) 중앙정부가 탐라의 내부 사정을 알리는 탐라구당사의 보고서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외관 파견 이전에도 고려는 탐라구당사를 통해 탐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였던 셈이다.
[관련 기록]
주로 상설직의 외관을 기재하는 『고려사(高麗史)』 백관지(百官志) 외직조에 그 이름이 올라 있다. 1079년의 윤응균과 1136~1142년까지 오인정(吳仁正)이 역임했던 사실이 확인된다.
『고려사』에는 또 “문종 33년(1079) 탐라국의 구당사윤응균이 큰 진주 2매를 고려에 보냈는데, 그 모습이 별과 같아서 그 때 사람들이 이를 야명주라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고려는 탐라군을 설치하던 1105년(숙종 10) 이전에도 중앙의 사신과 상설직인 탐라구당사 등의 관인을 통해 탐라의 제반 업무를 처리하였는데, 이는 고려 시대의 지방 지배 방식의 하나였다. 제주는 탐라군이 설치되는 숙종 10년(1105) 이전부터 이미 고려의 행정적 지배력이 미치는 지역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