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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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秦國泰 |
영어음역 | Jin Guktae |
이칭/별칭 | 중서(仲舒),순암(順菴),월계(月溪),진좌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좌동열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의 명의(名醫).
[가계]
자는 중서(仲舒), 호는 순암(順菴)·월계(月溪). 일명 진좌수라고도 한다. 제주도 입도조 진계백(秦季伯)의 10세손이며 아버지는 진정적(秦廷績)이다.
[활동사항]
전설에 따르면, 진국태가 다른 마을로 글공부를 하러 밤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인이 항상 나타나 구슬을 입에 물고 서로 입으로 넘겨주며 놀게 되었다. 여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그대로 했더니 나날이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제자의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눈치 챈 훈장은 진국태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범상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시 여인이 나타나 구슬을 주면 그 구슬은 여의주이니, 여의주를 입에 넣거든 바로 삼키고 하늘과 땅과 사람을 쳐다보라고 일러주었다. 다시 여인을 만난 진국태는 구슬을 건네받자 구슬을 삼킨 후 사람만을 보았다.
이 사실을 들은 스승은 “네가 구슬을 삼킬 때 하늘과 땅을 아니 보고 사람만 보았다니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는 되지 않겠지만 사람의 병을 너의 뜻대로 고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신의(神醫)라 일컬어졌을 만큼 의술에 능통했던 진국태는 월계 진좌수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멀리 중국까지 그 명성이 전파되어 중국인들이 처방을 청해오기도 하였다. 진국태가 죽은 뒤에도 중국인들이 찾아와 “의성(醫星)이 동남쪽에 떨어졌으니 이 지방에 명의(名醫)가 죽었다”며 진국태의 죽음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 진국태의 무덤을 찾아가 빌고 있다. 흔히 탐라사절(耽羅四絶)이라 하여 의술에 뛰어난 진국태, 풍모에 뛰어난 양유성(梁有成), 풍수지리에 뛰어난 고홍진(高弘進), 복서점술(卜筮占術)에 뛰어난 문영후(文榮後) 등 네 사람을 뽑고 있다. 김석익(金錫翼)이 진국태를 칭송하여 지은 찬시(讚詩)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묘소]
묘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