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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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西樓 |
영어음역 | Jukseoru |
영어의미역 | Jukseoru Pavil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4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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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599년(성종 32)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41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북수구의 누정.
[개설]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성종 32) 제주목사 성윤문이 제주성을 개축할 때, 남수구와 북수구에 무지개다리(홍예)를 놓고 그 위에 각각 제이각과 죽서루를 건립하여 남수각과 북수각으로 불렀다고 한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과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등에 죽서루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탐라지초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1611년(광해군 3) 9월에 유구국(琉球國) 세자가 국보 주천석(酒泉石)과 만산장(漫山帳)을 가지고 왜국에 잡혀 있는 국왕을 구하려고 가다가 태풍을 만나 이곳까지 떠밀려 왔는데, 목사 이현이 그 보물을 빼앗으려고 하자 유구국 세자가 이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에 노한 이현이 그 일행을 모두 죽여 버렸다.”
유구국 태자는 죽음에 임하여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요(堯)의 말로써도 걸(桀)의 옥 입은 몸을 변명하기 어려우니
죽는 마당에 하늘에 하소연할 겨를 있으랴.
삼량(三良)이 구멍에 들어가니 어느 누가 대신 죽겠는가.
이자(二子)가 배를 탔으니 도적놈도 불인(不仁)하도다.
백골이 사장(沙場)에 굴러다닐 때, 걸리나니 풀뿌리뿐이요.
외로운 혼이 고국에 돌아간들 어느 친척이 불쌍히 여기랴.
죽서루 아래 흘러가는 물만이
길이 나의 원한을 안고서 만년 동안 울부짖겠구나.
[현황]
현재 이 지역은 완전히 복개되어 그 자취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북수구 일대가 복개되어 죽서루의 복원은 요원해졌으나, 표석 등을 세워 제주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