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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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冬曦 |
영어음역 | Jo Donghu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문신.
[활동사항]
1164년(의종 18) 차함내전숭반(借啣內殿崇班)으로 송나라에 가서 유기(鍮器)와 동기(銅器)를 헌납하고, 1165년(의종 19)에는 의주판관으로 서북면병마부사 윤인첨(尹鱗瞻)과 상의하여 금나라 대부영(大夫營)에서 빼앗은 물건을 되돌려 주었다.
1168년(의종 22) 탐라의 첫 민란에 해당하는 양수(良守)의 난이 일어났다. 이에 조정은 조동희를 탐라안무사로 보내 난을 평정하고 탐라민을 위무하도록 하였다. 조동희는 양수를 죽이고 일반인에게 식량과 의복을 고루 분배하여 난을 평정하였다.
당시 탐라민은 선정을 펼쳤던 최척경(崔陟卿)이 다시 탐라현령으로 부임하기를 원하였다. 고려 정부는 탐라현령 역임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여 먹고 살기가 막막해 개경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최척경을 다시 탐라현령으로 부임하도록 하였다. 새로 부임한 최척경과 함께 백성을 위로하여 민심을 얻었고,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 승진하였다.
1170년(의종 24) 왕업을 연장시킬 땅을 살피러 서해도에 출장갔다가 정중부(鄭仲夫)의 반란 소식을 듣고 토벌 군사를 모으려고 동계(東界)로 넘어갔으나, 철령에서 호랑이가 길을 막는 바람에 무신란을 동조하는 군사에 체포되었다. 정중부는 양수의 난을 평정하였던 공을 감안해 먼 곳으로 귀양 보내는 처벌을 내리고자 하였으나, 감시하던 군사가 돌연 조동희를 죽이고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