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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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大秀 |
영어음역 | Jo Dae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136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허호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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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시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1361 |
성별 | 남 |
생년 | 1906년 |
몰년 | 1948년 |
본관 | 한양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한양. 아버지는 조휴주(趙休周)이며 부인은 이원랑(李元娘)이다.
[활동사항]
1920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3~4월에 고병희(高秉禧)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 기관의 문고를 설치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여 서로 돌리며 읽었다.
1929년 5월 5일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問·생활 향상 등을 위해 제주 지역 최초로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인 우리계를 조직해 매달 3원의 조합비를 3년간 거두기로 하였다.
우리계가 발각되어 조대수를 비롯해 고병희(高秉禧)·고영희(高永禧)·강기찬(康箕贊)·김형수(金炯洙)·임상국(任祥國) 등 6명이 검거되었다. 1931년 7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고병희·조대수는 징역 3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임상국은 1930년 12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로 석방됐다.
광복 뒤에는 사회 운동보다는 석유조합 경영 등 사업에 열중하였다. 제주 4·3사건 이 일어나자, 토벌대에 의해 1948년 12월 24일 총살되어 이호리 부근 밭에 암매장되었다. 조대수의 가족들은 “토벌대에 차출된 민간인 운전수가 알려줘 암매장된 지 보름 만에 시신을 찾았다”고 증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