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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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學生運動 |
영어음역 | Jeju Chulsin Gwangju Haksaeng Undong |
영어의미역 | Jeju-born Participants in the Gwangju Student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창후 |
[정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1930년 1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 항일 운동.
[역사적 배경]
1929년 광주 지역의 중등학교에는 비밀 결사 성진회에서 대중 단체 독서회 중앙부로 이어지는 조직이 있었다. 독서회 중앙부는 1929년 11월 3일의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소식을 듣고, 곧 투쟁 방향을 일제에 대한 독립 투쟁으로 돌릴 것을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발단]
1929년 11월 3일, 광주 고등 보통학교의 조선인 학생들과 광주 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 간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과]
사건 발생 후, 독서회 중앙부의 책임자 장재성은 광주 고등 보통학교, 광주 사범 학교, 광주 농업 학교의 동지들을 소집해 논의했다. 그 결과 이 사건을 반일 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해, “앞으로 투쟁 방향은 일제로 돌릴 것, 광주 고보생들에게 이 투쟁을 식민지 강압 정책 반대 시위로 돌리게 할 것, 장재성이 시위 운동을 지휘할 것”을 결정했다.
이러한 방침이 정해진 11월 10일 이후에는 투쟁 방향이 명확해져 전국의 학생들이 반일을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게 됐다. 그 후 학생들은 각종 반일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시위를 벌이고, 경찰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전화선을 절단하며 다음해 1월까지 반일 투쟁을 지속했다.
[결과]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 학생 운동은 12월에 접어들면서 전국으로 파급됐다. 그 결과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가했던 많은 학생들이 일제에 검거돼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에 처해졌다. 피검된 학생들 중 제주 출신 유학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대원은 광주 고등 보통학교 4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고,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김시성은 광주 고등 보통학교 4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고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김시황은 징역 4월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강윤석은 징역 4월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강문범은 광주 사범 학교 2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으며,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신휴근은 광주 사범 학교 3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으며,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신형은 광주 사범 학교 3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으며,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송두현은 광주 농업 학교 4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으며,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홍원표는 광주 농업 학교 4학년으로 독서회 회원이었으며,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광주 학생 운동은 우리 민족 독립 운동사에 길이 남을 학생 항일 독립 투쟁으로 그 배경에는 독서회라는 비밀 조직이 있었다. 혹은 독서회 멤버로, 혹은 시위 가담으로 많은 고초를 겪은 제주 출신 유학생들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