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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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靑年同盟 |
영어음역 | Jeju Cheongnyeon Dongmaeng |
영어의미역 | Jeju Youth Feder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금순 |
[정의]
1928년 4월 제주 청년 연합회 후속으로 결성된 사회주의 청년 단체.
[설립 목적]
청소년들에게 민족 계급 의식을 함양하게 하고 사회주의 이념 하의 대중 운동을 지향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제주 지역 내의 사회주의자들은 1925년 3월 신인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인회의 활동이 일제의 탄압을 받자 1925년 9월 제주 청년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제주 청년 연합회는 청년 조직의 정비에 주력하고자 1928년 4월 10일 모슬포에서 제주 청년 연합회 총회를 열어 제주 청년 동맹으로 개편하였다.
1928년 8월 제4차 조선 공산당 검거로 김택수·송종현·강창보·김정로·윤석원 등의 핵심 인물이 체포되고 제주 청년 동맹과 지부의 집회가 봉쇄되는 등 의 탄압으로 활동이 위축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청년들은 혁우 동맹 등의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소년 운동이나 해녀 항쟁, 동아 통항 조합, 농민 운동 등 생산 현장에서의 반일 활동의 배후로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
소년단과 야학 개량 서당, 공립 보통학교 등에서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신인 제주 청년 연합회의 결속을 더욱 강화한 조직으로 개편된 제주 청년 동맹은 조천, 함덕, 북촌, 제주면 등 각지의 청년 단체를 지부로 두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제주 청년 동맹의 맹원 수는 4,000여 명에 달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주 청년 동맹의 활동은 제주 지역의 청년과 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시켜 역량 있는 후세대를 양성함으로써 이후 제주 지역 항일 운동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