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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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言論同志會 |
영어음역 | Jeju Cham Eollon Dongjihoe |
영어의미역 | Association of True Journalism Supporters in Jeju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1171-2[광양9길 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문교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언론인 단체.
[설립목적]
참언론동지회는 언론 민주화 투쟁을 벌이다 회사 측과 충돌하여 집단 퇴사한 제주신문사 사원 106명이 새로운 일간 신문을 창간하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결성 취지문에서 지켜야 할 윤리의 기본을 ‘진실에 대한 충성’으로 선언하고 5개 항의 행동 방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우리는 언론인다운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보고 그 길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걸어간다. 둘째, 양심이 없는 지성은 한낱 억설일 뿐임을 확신하고,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신념으로 참언론 현장을 추구하고자 한다.
셋째, 인간 중심의 경영관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추구하여 ‘사람이 곧 자산’임을 구현하는 데 충실히 한다. 넷째, 언론의 공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윤리 의식을 확립하고, 역사적 진실을 획득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데 충실히 한다. 다섯째, 같은 출발선상에 선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의 자세로 동지애를 굳건히 한다.
[변천]
1987년 6·29선언을 계기로 전국 언론계에서는 언론 민주화 선언이 계속되었는데, 『제주신문』 기자들은 8월 11일 ‘편집과 경영의 분리’,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회사에서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1988년 7월 22일 기자협회 제주신문분회에서 김대성(金大成) 사장을 5공(五共) 세력으로 지목하고 퇴진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같은 해 7월 퇴임했던 김대성 사장이 1989년 11월 복귀 움직임을 보이자 『제주신문』 사원들은 민주언론쟁취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김대성 사장의 복귀 반대 투쟁을 벌였다.
사원들의 농성 투쟁이 50여 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회사 측은 1990년 1월 5일 폐업을 단행하고 사원 106명을 집단 해고했다. 회사 측이 폐업을 신고하고 신문 발행을 중단한 후에도 사원들은 제주신문수호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신문 발행을 계속했다.
농성 투쟁을 벌이면서 신문을 계속 발행하던 사원들은 1990년 1월 22일 지령 13,653호까지 발행하고 이튿날인 1월 23일 한국전력공사에서 단전 조치를 취함에 따라 78일 동안의 철야 농성을 중단하고 1월 25일 신문사를 떠났다.
집단 퇴사한 『제주신문』 출신 사원 106명은 새로운 일간 신문을 창간하기로 결의하고 1990년 1월 29일 제주참언론동지회를 결성했다. 이날 결성대회에서는 회장에 전 『제주신문』 편집부국장이었던 김지훈(金志勳)을 선출하고 논설·편집·업무·제작위원회 등 4개 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일간지 창간 준비에 들어갔다.
제주참언론동지회는 제주시 이도2동 1171-2번지[광양9길 41]에 있는 옛 제주감귤협동조합 제주시지소를 임대하여 사무실을 정하고, 1990년 2월 9일 제주지방법원에 주식회사 제민일보(濟民日報)로 법인 등기를 마치고 창간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제민일보 창간준비위원회는 자본 형태를 도민주(道民株)와 사원주(社員株)로 구성하기로 하고 2월 26일부터 3월 31일까지 주식을 공모했다. 한 주를 5천 원으로 하여 10주 단위로 모집한 결과 사원 109명이 출자한 5억 2800만 원과 각계의 2,753명이 청약한 17억 2300만 5000원 등 총 22억 5100만 5000원을 계획 기간 안에 확보했다.
도민주 청약에는 농민·어민과 소상인으로부터 공무원·법조인·교수·교사·예술인·의사·성직자·군인·주부·학생까지 다양하게 참여했으며, 도민 모금액은 당초 목표액이었던 15억 원보다 2억 2천여만 원이 초과되어 제주참언론동지회의 신문 창간에 대한 사회적인 호응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인쇄 시설은 일본 히타치사에서 제작한 윤전기(ORS-1250)와 전산 제작시설을 완비했는데, 이 인쇄 시설은 16면을 기준으로 시간당 3만 5천부를 컬러와 흑백으로 인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기계였다.
4월 25일 가칭 『제주도민일보(濟州道民日報)』로 사용해 온 새 신문의 제호를 『제민일보』로 확정하고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 회장에는 안태의(安太義), 사장에 김지훈을 선임하고 이사 15명과 감사 1명을 선출했다. 사원은 창간 준비위원 109명 중 입사를 결정한 106명을 부서별로 배치하여 발령했다.
창간준비위원회를 통하여 1990년 6월 2일 『제민일보』를 창간함으로써 창간 준비의 모체가 되었던 제주참언론동지회는 그 역할을 마치고 해체되었다.
[현황]
제주신문언론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활동했던 대표와 제주참언론동지회 회원으로는 고홍철(高弘哲)·김덕남(金德男)·홍훈기(洪薰基)·양병윤(梁秉允)·김지훈·조문부(趙文富)·강정홍·김원민·송상일·김덕남·양조훈·서재철·고재민·조맹수·진성범·홍훈기·김동훈·곽상필·고홍철·하주홍·김종배·허영선·고순형·김재하·고영진·백승훈·진행남·오길창·고두성·김대희·윤정웅·고대경·장제근·김승범·고창범·현승환·김범훈·강한성·김종민·강종택·오석준·고상철·이현모·좌승훈·조종숙·김군실·김규필·홍순칠·김세도·김동협·양상훈·김한수·고승훈·김창석·윤덕중·문상흠·김영애·양혜선·양달성·김종주·이우백·김성호·김용덕·김명혁·김종진·김태녕·이철수·정승웅·문군석·임영신·김철문·장기정·김도현·고용문·김창수·김경수·송두길·김두익·김승규·홍성범·문창희·좌태호·오용하·김구택·강제홍·이화중·고태군·이승률·김태음·이승홍·홍도현·이영준·백성훈·고창주·고재봉·변창규·고관옥·이용관·백평관·김희경·양봉규·정원기·좌성호·현의현·김순정·김행미·부희숙·양성희·한재흥·이남종·오금미 등 총 11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