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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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道-堂巫神圖 |
영어음역 | Jejudo Naewatdang Musindo |
영어의미역 | Portraits of Shamanic Deities in Naewatdang Shrine in Jeju-do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현용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11월 30일 -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국가민속문화재 제24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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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무신도 |
제작시기/일시 | 조선 전기 |
소장처 | 제주대학교 박물관 |
소장처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한천(漢川) 가에 있었던 내왓당[川外堂]의 무신도.
[개설]
모두 10폭으로 되어 있으며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로 32㎝, 세로 62㎝의 한지에 그려진 무신도 10폭은 모두 소나무 판자에 붙여져 있다. 모두 진채 물감으로 그려졌으며, 각 폭마다 신위 1위(位)씩을 앉은 자세로 그려 넣었다. 2001년 11월 30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무신도 10폭 중 남신도(男神圖)가 6폭이며 여신도는 4폭이다. 남신도의 의관은 각각 다르고 남신도 1폭을 제외하면 모두 부채를 잡고 있다. 우리나라 육지의 무신도들과는 화법이 전혀 다르고, 한지에 전통 채색 안료(彩色顔料)인 진채(眞彩)를 사용했고, 부분적으로 금박을 입혔다.
각 무신도에는 신명이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천자위(天子位), 상사위(相思位), 수령위(水靈位), 원망위(寃望位), 감찰위(監察位), 제석위(帝釋位) 6폭은 남신(男神)이고, 홍아위(紅兒位), 중전위(中殿位), 본궁위(本宮位), 상군위(相軍位) 4폭은 여신이다. 이 신명들은 순수 우리말로서 이두(吏讀)로 표기해 놓은 것이다.
『세조실록』 1466년(세조 12) 7월 계사일(癸巳日)과 병신일(丙申日) 기사에 이 당의 ‘화상(畵像)을 소각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어사(御使) 강우문(姜遇文)이 안무사(按撫使) 복승리(卜承利)를 모함하기 위해서 노산군(魯山君)의 화상을 천외당(川外堂)에 모셔 제사를 지내 소각했다는 것이다.
심방들의 구전에 따르면 이 신당의 신위는 12신위이며, 우리말 신명도 전승되고 있다. 우리말 신명과 한자 신명이 일치하는데, 구전하는 「내외불도마누라」라는 남녀 2신위의 무신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 소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0폭의 무신도는 세조 12년 이전의 그림임이 거의 확실하다. 혹자는 1702년(숙종 28)에 목사(牧使) 이형상(李衡祥)이 신당과 불사를 파괴할 때 내왓당 무신도가 소각되었고 그 후에 복원한 것이라 추정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12폭의 무신도 중 왜 10폭만 복원시켰는지는 설명이 안 된다.
내왓당은 제주도의 4대 국당(國堂)으로 전승되고 있을 만큼 큰 신당이었는데, 1882년(고종 19)에 훼철(毁撤)되었다. 훼철 당시 내왓당의 전속 사제무(司祭巫)였던 남격(男覡) 고임생(高壬生)이 자택으로 무신도를 옮겨 모셔왔다가 그와 그의 처가 사망하자, 1962년에 제주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게 되었다.
[특징]
우리 채색화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선묘(線描)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평면적인 채색을 하였으며,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가장 독특하게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