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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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彦儒 |
영어음역 | Jeong Eonyu |
이칭/별칭 | 임종(林宗),오헌(迃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임종(林宗), 호는 오헌(迃軒). 아버지는 참봉 정운서(鄭雲瑞), 어머니는 이정흥(李鼎興)의 딸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들어갔고, 1726년(영조 2) 예조좌랑에 올랐다. 예조좌랑 재임 중 강원도 일대 국릉(國陵)의 관리 상태를 살폈는데, 제대로 돌보지 않는 평창과 정선의 군수들을 처벌하게 하였다.
1744년(영조 20) 사헌부헌납에 임명되어 왕이 부당하게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을 처벌하는 일을 규탄하다가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 1747년(영조 23) 사간원사간을 거쳐 1748년(영조 24)에 경상도 영해부사로 발탁되어 지방 행정의 모순을 시정하여 영조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1758년(영조 34) 영조로부터 ‘정직하고 청렴하여 보배로운 인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1749년(영조 25) 10월 경상도 영해부사 재임 중 박태신(朴泰新)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51년(영조 27) 8월 청귤 진상과 공마(貢馬)의 일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
1749년(영조 26) 봄 조정으로부터 공급된 구호미 3천 석으로 기민들을 진휼하였으며, 3년 동안 대동미를 면제하게 하였다. 1751년 흑우장(黑牛場)을 가파도에 설치하고 소 50두를 방목하여 진상하는데 대비케 하였다. 흑우는 제주에서 길러내어 대제(大祭)의 제물로 조정에 바치는 것이다.
[상훈과 추모]
꾸밈을 싫어하고 소신대로 추진하였으며 직언을 잘하는 것이 인정되어 1796년(정조 20)에 청백리로 추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