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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778
한자 鄭彦儒
영어음역 Jeong Eonyu
이칭/별칭 임종(林宗),오헌(迃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출신지 강원도 철원
성별
생년 1687년(숙종 13)연표보기
몰년 1764년(영조 40)연표보기
본관 동래(東萊)
대표관직 예조좌랑|사헌부헌납|사간원사간|영해부사|제주목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임종(林宗), 호는 오헌(迃軒). 아버지는 참봉 정운서(鄭雲瑞), 어머니는 이정흥(李鼎興)의 딸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들어갔고, 1726년(영조 2) 예조좌랑에 올랐다. 예조좌랑 재임 중 강원도 일대 국릉(國陵)의 관리 상태를 살폈는데, 제대로 돌보지 않는 평창과 정선의 군수들을 처벌하게 하였다.

1744년(영조 20) 사헌부헌납에 임명되어 왕이 부당하게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을 처벌하는 일을 규탄하다가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 1747년(영조 23) 사간원사간을 거쳐 1748년(영조 24)에 경상도 영해부사로 발탁되어 지방 행정의 모순을 시정하여 영조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1758년(영조 34) 영조로부터 ‘정직하고 청렴하여 보배로운 인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1749년(영조 25) 10월 경상도 영해부사 재임 중 박태신(朴泰新)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51년(영조 27) 8월 청귤 진상과 공마(貢馬)의 일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

1749년(영조 26) 봄 조정으로부터 공급된 구호미 3천 석으로 기민들을 진휼하였으며, 3년 동안 대동미를 면제하게 하였다. 1751년 흑우장(黑牛場)을 가파도에 설치하고 소 50두를 방목하여 진상하는데 대비케 하였다. 흑우는 제주에서 길러내어 대제(大祭)의 제물로 조정에 바치는 것이다.

[상훈과 추모]

꾸밈을 싫어하고 소신대로 추진하였으며 직언을 잘하는 것이 인정되어 1796년(정조 20)에 청백리로 추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03 내용 수정 호 우헌->오헌으로 수정(2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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