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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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百堂五百 |
영어음역 | Jeol Obaek Dang Obae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혜련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무속 신앙이나 불교가 성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어.
[개설]
제주의 마을은 농경, 어로 등의 생업을 서로 돕는 생산 공동체이며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공동 작업의 안전·번영을 기원하는 무속적 의례를 공유하는 신앙공동체였다.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은 조선의 유교적 정치 이념에서 보아 민간신앙인 무속이 얼마나 생활 속에 뿌리내렸는가를 나타내 주는 말이다.
[역사적 의미]
제주의 무속 신앙과 불교는 타 지역에 비하여 그 지배력이나 파급력이 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해 산림·내·연못·언덕·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라고 할 만큼 사실상 무속 신앙이 굉장히 성행했으며 당(堂)도 많았다.
그러나 사찰은 수정사(水精寺), 묘련사(妙蓮寺), 서천암(逝川庵), 보문사(普門寺), 법화사(法華寺), 원당사(元堂寺) 등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사람들은 당이나 사찰을 굳이 구분지어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앙인(신자)들 또한 뚜렷한 개념의 구별 없이 ‘절에도 가고 당에도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절 오백 당 오백’이란 말은 유교를 국시로 삼았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많았던 당과 사찰의 존재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이형상 목사와 관련 기록]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의하면 1702년(숙종 28)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도내 각 마을에 산재해 있던 신당 129개소와 사찰 5개소를 불태워버리고 1천명에 가까운 무당들을 모두 귀농시켜 더 이상 미신행위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형상 목사가 ‘절 오백 당 오백을 파괴했다’는 것은 유교의 이상 정치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많았던 당과 사찰을 파괴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