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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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漢喆 |
영어음역 | Jang Hancheol |
이칭/별칭 | 녹담(鹿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성격 | 문신|대정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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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
성별 | 남 |
생년 | 1744년(영조 20) |
몰년 | 미상 |
본관 | 해주(海州) |
대표관직 | 대정현감|흡곡현감 |
[정의]
조선 후기 대정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녹담(鹿潭). 아버지는 이차방(李次房)이다.
[활동사항]
1770년(영조 46) 향시에 합격하고 대과에 응시하려 출항하였으나 풍랑을 만나 유구(琉球)[일본 오키나와]의 호산도(虎山島)에 표착하였다. 온갖 고생 끝에 1771년(영조 47) 2월에 서울에 도착하여 식년시에 응시하였으나 불합격하자 5월 8일 귀향하여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하였다.
1774년(영조 50) 홍상성(洪相聖)[1734~?]이 제주순무어사(濟州巡撫御使)에 부임하여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였을 때 김경회(金慶會)[1746~1799], 강봉서(姜鳳瑞)[1746~1823] 등과 함께 합격하였다. 1775년(영조 51) 5월 26일 정시 문과의 별시에 급제하여 강원도 흡곡현감을 거쳐 1788년(정조 12) 2월 홍계선(洪繼善)의 후임으로 대정현감에 부임하여 1789년(정조 13) 1월까지 재임하였다.
대정현감 재임 중인 1788년 9월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대정현 사람 이환(李還)과 함께 기민을 구제하는 데 힘써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저술 및 작품]
일기체로 된 한문 필사본의 『표해록』과 『녹담집(鹿潭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