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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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允文 |
영어음역 | Jang Yunm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문신.
[활동사항]
식목녹사로 재임 중이던 1186년(명종16) 탐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어 탐라현령에 임명되었다. 탐라의 반란은 무고였음이 드러났지만, 장윤문의 탐라현령 임명은 그대로 시행되었고 전임자는 면직되었다.
장윤문의 묘지명에 의하면, 과거 급제 출신이 탐라현령으로 부임하여 은혜와 위엄이 있는 시정을 펼쳐 탐라민이 늦게 부임해 왔음을 한탄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동경(東京)[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의 외관 재직 때에는 청백리로 칭송받았고, 청요직에 해당하는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도 역임하였다.
1202년(신종 5)에는 소부소감을 지내던 중, 탐라에서 번석(煩石)과 번수(煩守)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중랑장 이당적(李唐績)과 함께 탐라안무사로 파견되었다. 반란은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3개월이나 지속되다가 무자비한 진압으로 종식되었다.
1207년(희종 3) 대사성(大司成)으로서 국자감시(國子監試)의 시관(試官)이 되어 시부(詩賦)에 김남석(金南石)을, 십운시(十韻詩)에 권시위(權時偉) 등 90여 명을 선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