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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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瑢珍 |
영어음역 | Jang Yongj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883[한림로 370-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허호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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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883[한림로 370-1] |
성별 | 남 |
생년 | 1910년 |
몰년 | 1983년 |
본관 | 인동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26년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0년 귀국하였다. 1930년 장병윤(張炳允)·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金昇玉)·강공흡(姜公洽) 등과 함께 윤한진의 지도 아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1년 5월 5일 일어난 한림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이익우(李益雨)·최복렬(崔福烈)·윤한진·장병윤 등과 함께 구속되었고, 풀려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1년 9월 30일 일본 교토시 중경구(中京區) 송원통(松原通)에 있는 대구보(大久保) 날염 공장에서 일어난 노동쟁의에 참가하였다. 당시 『전기(戰旗)』·『금속노동자』·『제2무신(第二無新)』 등의 서적을 탐독하였다.
1931년 11월 귀국한 뒤 자신의 집에서 향진복습소(向進復習所)를 개설하여 아동들에게 3·1절과 노동절 노래 등을 가르치다가 1932년 1월에 검거되었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934년 7월 무명(無名)의 비밀 결사를 조직, 재정부를 담당하여 항일 운동의 자금 조달을 하였다. 혁명적 제주도노동조합 준비위원회 활동에 관여한 일이 발각되어 1937년 4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