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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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炳允 |
영어음역 | Jang Byeongyun |
이칭/별칭 | 장석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43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허호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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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433 |
성별 | 남 |
생년 | 1914년 |
몰년 | 1983년 |
본관 | 인동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인동. 일명 장석호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장문환(張文煥)이다.
[활동사항]
구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1살 때 협재소년회에 가입해 덕육부장을 맡았다. 1928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교토·오사카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1930년 귀향하였다.
귀향 직후 윤한진(尹漢珍)의 집에서 고창순(高昌淳)·장정호(張楨鎬)·김이규(金二奎)·김승옥(金昇玉)·강공흡(姜公洽)·장용진(張溶珍) 등과 함께 윤한진의 지도 아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1년 5월 5일 일어난 한림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이익우(李益雨)·최복렬(崔福烈)·윤한진·장용진 등과 함께 구속되었다. 1933년 1월 제주도 적색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한림면 농민위원회의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33년 7월 홍경옥의 집에서 구우면 당국이 체육을 장려하고 있었으므로 축구를 통하여 동지를 확대하는 문제를 협의하였다. 1933년 9월 구우공립보통학교의 이전 문제와 관련해 무산 농민의 부담을 과중시키고 자본주의 교육이 농민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농민들을 설득하여 지지를 얻었다.
협재리의 항일운동가들은 1934년 7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홍경옥을 책임자로 하고 농민부는 홍경옥, 재정부는 장용진(張溶珍), 가두부(街頭部)는 장병윤, 소년부는 강공흡이 맡았다. 장병윤은 1934년 7월 무렵 제주도 적색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의 활동에 앞장서다가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