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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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弘望 |
영어음역 | Im Hongmang |
이칭/별칭 | 덕장(德章),죽실거사(竹室居士),효정(孝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소정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덕장(德章), 호는 죽실거사(竹室居士), 시호는 효정(孝貞). 아버지는 좌참찬에 추증된 임환(任喚)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감역 신방헌(申邦憲)의 딸이다.
[활동사항]
1657년(효종 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66년(헌종 7)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후 도원찰방·가례도감조관·성균관전적을 거쳐 현종이 죽자 산릉도감낭청에 임명되었다.
숙종 때 사간원정언 재임 중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예송(禮訟)에 대해 송시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경성판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병조참지·승정원승지·예조참의 등을 지내고 진위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승지를 지냈으나 정국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낙향하였다.
1680년(숙종 6) 8월 원상(元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681년(숙종 7) 12월에 신병으로 떠났다. 제주목사에 부임하면서 제주향교 근처에 책고(冊庫)를 세우고 사서삼경·선현문집·주자필첩(朱子筆帖) 등을 인쇄하여 유생들에게 읽게 하였다. 1681년 봄 도민의 부역이 고르지 못하였다고 조정에 주청한 결과 상정법령(詳定法令)을 작성하여 전 제주현감 문영후(文榮後)와 조수 오상현(吳尙賢)이 그 일을 관장하도록 하고 이름 없는 세금을 폐지시켜 도민을 편안하게 하였다.
1689년(숙종 15) 경주부윤 재임 중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이 문묘 배향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임하였으나 반려되었으며,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후 도승지를 거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인 『죽실집(竹室集)』이 있다. 1844년(현종 10) 후손 임헌회(任憲晦)가 편집·간행하였으며, 4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이 가운데 「경연일기」는 1687년(숙종 13)부터 1699년까지 12년간 경연에서 사서와 오경을 진강한 것을 비롯하여 대신들과 주고받은 정치 문제까지 소상하게 일기체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들어있지 않은 내용도 많이 있다.
또한 「갑기록(甲記錄)」은 1674년(현종 15)부터 1689년(숙종 15)까지 조정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가려서 상세히 기록하게 하고 그 처리 결과를 기록한 자료이다. 이 밖에도 조상들의 기록을 모아 정리한 「선적잡기(先蹟雜記)」와 「선산지(先山誌)」 등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