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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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徒-洞 |
영어음역 | Ildo 1(il)-dong |
이칭/별칭 | 일내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 1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명철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제주시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주시의 가장 중요한 간선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동문로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는 중앙로인데 이들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할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외부 문물이 드나들던 산지천의 하구를 두고 있어 일찍부터 제주의 중심 취락으로 발달하였다.
[명칭 유래]
일도 1동은 이도동(二徒洞), 삼도동(三徒洞)과 함께 오래 전 탐라국 시대부터 제주시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체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었다. 이들 마을은 각각 일내, 이내, 삼내로 불렸는데, 일도동은 일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도(都 혹은 徒)는 마을을 의미하며, 이를 ‘내’ 라 읽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양을라가 사는 곳을 일내, 고을라가 사는 곳을 이내, 부을라가 사는 곳을 삼내라 하였다.
[형성과 변천]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中面) 지역으로 옛날에 제주 삼성혈에서 나온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의 3신이 활을 쏘아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일도 1동은 양을라가 살았으므로 일도라 하였다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일도리라 하여 제주군 제주면에, 다시 1931년 4월 1일에 제주군에 편입되었다.
1955년 8월 13일 일도 1동, 일도 2동으로 개칭, 9월 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고 25개 리가 40개 동으로 개편될 때 일도동으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가, 1979년 다시 일도 1동, 일도 2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해발 고도 약 20m 이하의 평지를 이루며, 완전히 시가지화 되었다. 북쪽으로는 건입동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인접해 있다. 오랫동안 제주시민에게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해 온 산지천이 동의 중앙을 지나 북쪽의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산지천은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복개되었다가 2002년에 다시 복원되어 대표적인 도시 생태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시의 북쪽 중심부에 있는 행정동으로 기하학적으로 변형된 ㄱ자 모양이다. 2006년 12월 현재 면적은 0.31㎢이며, 총 1,763세대에 3,860명[남자 1,948명, 여자 1,9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건입동, 남쪽은 이도 1동, 서쪽은 삼도 2동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은 건입동을 사이에 두고 제주 해협과 각각 접하고 있다.
상업 및 금융 기관이 밀집한 도심 지역이라서 상주인구는 많지 않으나 주·야간 모두 유동 인구가 많아 서비스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상주인구가 약 40% 가량 감소하여 이른바 도심 공동화(都心空洞化)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 면적 가운데 대지와 도로 등 도시용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90% 정도이며, 산지천의 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하천이 9%를 점유한다.
주요 기관은 국립 수산물 품질 검사원, 제주 지방 기상청이 있으며, 시설로는 전통적 재래시장인 동문 공설 시장과 제주도에서는 유일한 중앙 지하상가, 그리고 비버리힐 백화점 등이 있다.
칠성로, 중앙로, 관덕로, 동문로 등에는 많은 은행과 새마을 금고, 증권 회사 등이 밀집해 있어 제주도 내의 주요 금융 중심지이며, 이 밖에도 병원과 의원, 극장, 상가 등이 들어서 있어 제주의 중심 업무 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지명은 내팟굴, 샛물골, 창신골, 칠성골, 운주당골, 막은굴, 배부른동산, 성굽, 고령밧, 산지목골, 알생깃골, 소로기동산, 막은골, 해짓골, 산짓물골, 한짓골, 샛물골 등이 있다.
제주의 간선 도로인 동문로와 관덕로를 통해 동~서 방향으로 쉽게 연결되고, 중앙로를 통해서는 남~북 방향으로의 접근이 용이해 제주도 내 교통의 요지이다. 대외적으로도 해상 교통과 항공 교통을 통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교류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