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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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城君家族流配 |
영어음역 | Inseonggun Gajok Yubae |
영어의미역 | Exile of Prince Inseonggun's Famil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조선 중기 선조의 왕자 인성군 가족이 제주로 유배되어온 사건.
[개설]
1628년 모반의 혐의로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인성군이 진도로 유배당한 뒤 죽고, 부인 윤씨와 아들 삼형제, 두 딸은 제주도로 유배당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인성군은 선조의 일곱 번째 왕자이다. 정빈 민씨의 소생으로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선조의 사랑을 받았다. 12세에 인성군에 책봉되었고, 커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도제조와 종친부의 유사를 겸직했다. 이로 인해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비론에 종척(宗戚)을 대표하여 참석하였던 것이 모함을 받게 되었다.
[발단]
1623년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인성군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비론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귀(李貴) 등의 의해 탄핵을 받기도 했다. 그후 1628년(인조 6) 정월 이우명·유효립 등 대북파의 남은 무리들이 광해군의 복위를 모의했는데, 이들이 모반을 기도할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인성군은 진도로 유배되었다.
[경과]
진도로 유배간 인성군은 모반의 혐의가 있다고 죽임을 강요당했고, 남은 가족인 윤씨 부인과 아들 삼형제 및 두 딸은 1628년 6월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6월 28일 제주에 도착하여, 객사골 관인의 집에 입접(入接)하였다.
[결과]
동계 정온은 이들 인성군 가족의 무죄를 상소하여, 인조 13년(1635) 11월 두 아들 및 막내 이건(李健)은 강원도 회양으로 유배지가 옮겨졌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유배에서 석방되었다.
『제주 풍토기』의 저자인 이건은 인성군의 셋째 아들로서, 1635년(인조 13) 12월까지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보고 들은 바를 그의 문집 『규창집(葵窓集)』에 수록하였다. 이는 당시 제주의 사정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사료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