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47 |
---|---|
한자 | 李玄功 |
영어음역 | Yi Hyeongong |
이칭/별칭 | 여지(汝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보경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840년(헌종 6) 성균관 유생에게 황감(黃柑)을 주면서 치른 과거 시험인 황감제에서 부(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을 거쳐 승정원부승지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6월 장인식(張寅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851년(철종 2) 7월 경기도 여주의 수령으로 있을 때의 일로 파직되었다.
1850년 관덕정(觀德亭)을 중수하고 삼천서당(三泉書堂)과 제주향교를 개건하였다. 1851년 제주향교에 서재(西齋)를 건립하여 재생(齋生: 조선시대에 성균관이나 사학 또는 향교의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학문을 닦던 선비)에게 과업을 권장하고 늠료(澟料: 조선시대에 벼슬아치에게 주던 봉급)를 설치하였다.
1851년 3월 금물포(今勿浦)[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정박한 프랑스 선박의 선원이 요청한 쌀 두 섬, 닭 열 마리, 땔감, 숯 등을 보내 주었더니 답례로 서양목(西洋木) 두 단과 유리병 16개를 보내 왔다.
[상훈과 추모]
제주 삼성혈 사우를 개건한 공로가 있어 제주 삼성혈에 사상이후현공거사비(使相李侯玄功去思碑)가 세워졌으며, 1853년(철종 4) 5월에 세운 이현공 휼민선정비(李玄功恤民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비석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