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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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八 |
영어음역 | Yi Wonpal |
이칭/별칭 | 순거(舜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보경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거(舜擧). 아버지는 이이정(李耳鼎)이다.
[활동사항]
1790년(정조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 22) 1월에 백영진(白泳鎭)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인 1822년 여름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죽은 자가 3천여 명이나 되자, 조정에서는 사헌부집의 조정화(趙庭和)[1779~?]를 제주위유어사(濟州慰諭御使)로 파견하고 제단을 마련하여 제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때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여 문과에 신상흠(愼尙欽)[1794~1874] 1명을 합격시켰고, 마병도시(馬兵都試)를 신설하여 매년 10월 15일에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자 중에서 1명을 선발하였다.
또한 길거미(拮居米: 재정이 곤란할 때 쓰는 쌀) 47석을 사창(司倉)에 두어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접대용으로 쓰게 하였다. 효열을 장려하여 영평촌 효자 부천겸(夫千謙)과 어도촌 효자 현원상(玄元祥)의 집안에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또 송장을 묻어주고 뇌물을 근절시키고 선세(船稅)를 감면해 주었다. 1824년(순조 24) 1월에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떠났다.
[상훈과 추모]
1824년 이원팔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사상이공원팔휼민선정비(使相李公元八恤民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