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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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震 |
영어음역 | Yi Sejin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면 저지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금실 |
성격 | 승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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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면 저지리 |
성별 | 남 |
생년 | 1910년 |
몰년 | 1949년 |
대표경력 | 한림포교당 포교사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불교의 혁신 운동에 앞장섰던 승려.
[개설]
초명은 이임생(李壬生), 호는 고산(古山), 법명은 세진. 어려서부터 내장사의 백학명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던 내장선원(內藏禪院)과 서울의 불교 전문 강원인 대원강원(大圓講院)에서 수학하였다. 1934년까지 대교과(大敎科) 및 수의과(隨意科)를 모두 이수하였다.
[활동사항]
일제강점기의 친일 불교를 극복하고 제주 불교의 경제적 자립과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4년 6월부터 교육 활동가로 현장에 나섰다. 1937년 2월까지 내장선원에서 교육 활동에 매진하였고, 1937년 3월에는 표훈사 중향강원(衆香講院)의 강주(講主)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39년 2월에 백양사 한림포교당 포교사로 제주에 입도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주 내 각 사찰의 청년 승려들을 모집하여 관음사 포교당인 대각사(大覺寺)에서 최초로 근대식 강원 교육을 실시하였다. 1942년 도평리 산간 마을에 서관음사(西觀音寺)를 창건하여 승가의 경제를 독립시키고 나아가 전문적인 전통 강원의 설립을 추진하려 하였다.
1948년 봄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자 유격대에 가담하여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의 휘하에서 활동하다 1949년 7월경 군경에 의해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