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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59
한자 醫療機關
영어음역 uiryo gigwan
영어의미역 medical facilities
이칭/별칭 병의원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순택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의 질병이나 부상을 예방·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관련 기관.

[개설]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은 국가·지방 자치 단체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 단체가 설립·운영하는 보건 의료 기관을 말한다. 응급 의료 기관은 「의료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의료 기관 중에서 이 법에 의해 지정된 중앙 응급 의료 센터, 권역 응급 의료 센터, 전문 응급 의료 센터, 지역 응급 의료 센터 및 지역 응급 의료 기관을 말한다.

보건의료 기관은 보건 의료인이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을 위하여 보건 의료 서비스를 행하는 보건기관·의료 기관·약국,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을 말한다. 의료 법인은 의료업을 목적으로 「의료법」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법인이며 공중 위생에 기여하고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안 된다.

1차 의료 기관은 의원, 보건소, 보건 지소, 보건 진료소, 모자 보건 센터, 조산소 등으로, 환자와의 초기 접촉을 통해 예방과 치료가 통합된 포괄적인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원을 통해 진료를 담당하며, 「의료법」에 의하여 시장·군수·구청장에게 개설 신고를 한 의료 기관, 「지역 보건법」에 의한 보건소 보건 의료원 및 보건 지소, 「농어촌 등 보건 의료를 위한 특별 조치법」에 의한 보건 진료소 등이 이에 속한다.

2차 의료 기관은 기본적으로 4개과 이상의 진료 과목이 갖춰져 있으며, 전문의가 외래 및 입원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시설과 보조 인력이 있는 ‘병원급’ 전문 치료 기관이다. 병원, 치과 병원, 한방 병원은 의사, 치과 의사, 또는 한의사가 각각 의료를 행하는 곳으로 입원 환자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을 말한다.

3차 의료 기관은 종합 병원이나 대학 병원 등으로 중증 환자를 보는 곳이며, 5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의과 대학 부속 병원 또는 종합 병원을 말한다.

종합 병원은 입원 환자 10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진료 과목으로 내과, 일반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진단 방사선과, 마취과, 임상 병리과 또는 해부 병리과와 정신과 및 치과가 들어 있어야 하고, 각 과마다 필요한 전문의를 갖추고 있는 의료 기관을 말한다.

[변천]

1. 조선 시대의 의료 기관

조선 시대에는 한방 한약과 원시적 민간요법 그리고 미신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료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45년에 제주도의 제도권 의료 기관으로 이미 한센병을 치료하는 공익 시설인 구질막(救疾幕, 治病所)이 있었다.

『탐라지(耽羅志)』를 살펴보면, 제주목(濟州牧)에는 대문 동쪽 좌위랑에 심약방(審藥房)이 있었으며, 전의감과 혜민서에서 파견된 종9품 외관직인 심약(審藥)이 지방 관아의 의료와 그 지역에 할당된 약재 수급을 책임졌다고 한다. 의생 14인과 약한(藥漢) 20명이 이곳에서 근무했다. 약포(藥圃)는 홍화각 북동쪽에 있었다.

2. 근·현대 의료 기관

1910년 9월, 일제는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제주목 이아(吏衙)터에 근대적 지역 병원인 전남 제주 자혜 의원[도립 제주 의원의 전신]을 개설했다. 1912년 5월16일 조선 총독부로부터 명칭과 위치에 대한 설립 인가를 받고, 그 해 10월 제주시 삼도 1동 154번지 6,104㎡의 땅에 병원을 신축하고, 한식 목조 건물을 개조하여 병실[16병상]로 꾸몄다.

1927년 전남도립 제주 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6년 개축 공사를 통해 준공된 건물은 1997년 12월 제주 의료원 응급 의료 센터를 짓기 위해 헐렸다. 전남 제주 자혜 의원은 의사 4명, 간호사 1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내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산부인과, 치과를 개원한 후 외과, 정신병과를 신설했다.

1923년 7월에는 6명의 의사가 내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산부인과, 치과, 시료부(施療部) 등 8개 과로 분과하여 진료를 하는 한편, 지방 순회 진료와 경찰서와 형무소 촉탁의 및 재판의(裁判醫)와 농업학교, 소학교, 보통학교의 교의를 겸하였다.

전남 제주 자혜 의원에는 초대원장 아리카와 도오루[蟻川亨][일본 군의]의 착임 이후 광복 전까지 일본인 의사 27명, 한국인 의사 14명, 약제사[일본인] 5명, 조수[한국인] 3명, 서기 7명[일본인]이 거쳐 갔다.

이후 16병상 규모에 상주 의사 2~5명이 내과[소아과 포함], 외과[피부비뇨과 포함], 안과, 산부인과, 치과 등 5개과의 진료를 했다.

제주도 내 최초의 의료 기관은 의생 장한규(張漢奎)[1880~1942]가 1916년 상청골에 개원한 인화 의원이다. 처음으로 개원한 의사는 김태민(金泰玟)[1888~1965]으로 백목골에서 장춘 의원을 개원했다. 첫 치과 의사는 김한조(金漢祚)[1913~1966]로 1939년 제주시 칠성로에 송재 치과 의원을 개원했다.

첫 민간 병원은 1967년 50병상을 갖추고 개원한 나사로 병원으로 문종후(文鍾厚)[1917~1994]가 개원했다가 1996년에 폐업했다. 전문 과목을 표방하여 처음 개원한 사람은 1966년 서울 산부인과 의원의 강치명(姜治明)[1928~2006]이다.

그 밖에 광복 전후 이름을 날린 산북 의료 기관들은 다음과 같다.

○ 춘헌 의원[원장 장봉익, 1878~1956]이 1916년 애월리에서 개원했고, 광복 후 장남 장시현(張時玹)[1916~?]이 이어받았다.

○ 광제 의원[원장 장응삼, 1913~1945]은 1938년 애월읍 1524번지[애월로11길 14]에 한양방을 겸해 신축, 개업하였다.

○ 강 의원[원장 강황렬, 1915~1948]은 1943년 애월읍 애월리에서 개원하였다.

○ 정화 의원[원장 최정숙, 1902~1977]은 최정숙이 1944년 삼도리 향청 안에 개설하여 주로 소아과 환자를 돌보았다.

○ 수성 의원[원장 김형영, 1904~1971]은 안덕면 화순리에서 개원하였다가 1942년 한림읍 귀덕리로 자리를 옮겼다.

○ 1945년 제주시 삼도동 95번지[관덕로 36-1] 개원하였던 박 외과 의원[원장 박영훈, 1912~1966]은 1946년 8월 제주도 보건 위생국 국장에 기용됐다가 개업의로 재출발했고, 1961년 제주도립 병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 회춘 의원[원장 신상근, 1906~1986]은 조천읍 함덕리에 있었다.

○ 십자 의원(원장 부기선, 1907~1981)은 표선면 표선리에서 공의진료소로 개원하였다가 1946년 6월 제주시 이도 1동으로 옮겼다.

○ 제중 의원[원장 이승호, 1913~?]은 1947년 제주읍 일도 1동 1461번지에 입원실 15개를 갖춘 3층짜리 의원으로서 이승호 원장은 침술과 한방을 겸한 명의로 이름이 높았다.

○ 문종혁 의원[원장 문종혁, 1920~1956]은 제주도립 병원 원장[1946~1948]에서 퇴임한 문종혁이 1948년 남문로 입구에 개업, 소아과로 이름을 높였다.

○ 정 의원[원장 정태무, 1918~1988]은 1958~1980년까지 제주 시내에서 성업했다.

○ 홍제 의원[원장 김시존, 1917~1980]은 1961년 1월 제주시 일도 1동에서 개원하였다가 1966년 구좌읍 세화리로 자리를 옮겼다.

○ 호남 의원[원장 양한경, 1911~1970]은 1942년 한림읍 한림리에서 개원하였다.

○ 전 의원[원장 전명식, 1914~1987]은 1953년 7월 제주시 삼양리에서 개원하였다가 1958년 6월 안덕면 공의로 자리를 옮겼다.

○ 후생 의원은 1938년 9월부터 오창흔[1908-1989]이 운영하다가 1950년 3월부터 고영은[1922~1986]이 이어받아 1978년 3월까지 운영했다. 이 동안 1950년 10월 31일부터 1953년 10월까지 해군 제3병원에 강제수용되기도 했다.

○ 광신 의원[원장 홍순억, 1908~1989]은 1962년 7월 26일 제주시 이도 1동 1379번지에 세워졌다.

○ 1975년 공의로 북제주군 보건소 소장을 3년간 역임했던 김경지[1920~2000]는 제주시 이도 1동에 김 의원을 개업했다.

○ 근춘 의원[원장 김동수, 1919~1954]은 금산 의원의 후신으로 1946년 한림읍 한림리에서 개원하였다.

○ 김 의원[원장 김여신, 1917~1990]은 1946년 한림읍 한림리 제성 의원(濟誠醫院)의 후신이다. 군의관으로 8년간(1952~1960) 봉직한 후 김여신은 한림에서 다시 의원을 열었고 1978부터 북제주군 보건소 소장을 지냈다.

○ 제주 치과 의원[원장 김병식, 1921~1985]은 1946년 제주 북 초등학교 앞에 제주 치과 의원으로 개설되어, 36년간 진료를 하였다.

3. 제주도 의약 시설 및 의사 수의 변천

광복 후 첫 공공 의료 기관은 전남도립 제주 의원이었고, 도제 실시[1946년 8월 1일]와 함께 행정 질서가 기틀을 잡으면서 공공 의료 기관과 개원의가 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의약 시설 및 의사 수의 변화를 정리하면 〈표-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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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의료 기관

광복 당시 의료 기관으로는 도립 제주 의원과 의원 22개소[제주읍 3개소, 치과 1개소, 서귀포, 중문, 표선, 고산, 대정, 김녕 각 2개소, 귀덕, 성산포, 함덕, 세화, 한림, 애월, 조천 각 1개소]에 불과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에는 병원 1개소, 의원 28개소, 치과 의원 6개소, 한의원 3개소, 공의 진료소 14개소 등 모두 52개소로 늘었다가 4년 후 43개소로 감소했다.

1993년 말 현재 도내 의료 기관은 종합 병원 3개소[병상 879개], 병원 4개소[병상 258개], 의원 127개소, 한의원 28개소, 치과 의원 82개소, 부설 의원[부속 의원] 4개소, 보건소 4개소, 보건 지소 12개소, 조산소 1개소, 보건 진료소 46개소 등 311개소로 1946년에 비해 7배 늘었다.

한의원 수는 수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 병상 수는 1984년 436개에 불과했으나 10년 후인 1994년 1,886개로 4.3배 불어났다.

[군병원의 영향]

식민지 시절 전남 제주 자혜 의원은 한국 주재 일본군이 저장했던 의약품 및 의료기기, 기구 등 의료 장비를 토대로 1910년 창설됐고, 원장이나 의사들도 현역 군의관으로 충당되었다. 전남 제주 자혜 의원은 조선 침탈을 위한 군병원이었던 것이다.

제주도에 군사 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모슬포에 해군 항공 기지를 위한 비행장 건설이 추진되던 1926년부터였다. 광복 전까지 제주에 들어온 일본군은 총 7만 4,781명[군인 5만7,620명, 한국인과 군속 1만7,161명]이었다. 지원 의무 부대로 운영되던 제64병참병원은 1945년 5월 미 공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도립 제주 의원이 의료를 대행했다.

광복 직후에는 미군정 아래 경찰 병력이 증강되면서 국방경비대총사령부는 1946년 4월 8일 제주 지역의 방위를 위한 향토 부대로 국방 경비대 제9연대를 창설하여 모슬포에 주둔시켰다. 1949년 11월에는 해병대가 주둔했으나 병원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1948년 4·3 사건이 일어나자 소요 진압을 위해 많은 병력이 파견되면서 상병 치료에 군의무관이 배치됐고, 의무단장은 1948년 10월 10일부로 특설 군법 회의 재판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그러나 상병 진료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의약품을 보건부로부터 지원받거나 민간 의료 기관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라산 무장대 지휘부는 어승생악 인근 ‘승패왓’에 야전 병원을 설치하고, 제주시 사수동 출신의 의사가 부상병을 치료했다.

1950년에는 한국 전쟁을 계기로 해군 제주 기지 사령부가 설립됐고, 해군 소속의 의무 시설로는 해군 제3병원[1952년 해군 제주 병원으로 개칭]이 1950~1953년간 유지되었다.

이때 외래 진료소를 옛 후생 의원에 두고 병동은 제주시 삼도 2동 283번지 구(舊) 제주 농고 부지에 뒀다. 한편 육군은 1951년 3월 21일 육군 제1 훈련소 직할 의무부(醫務府) 소속으로 98 육군 병원[98육병]을 설립했고 1957년 전주로 철수했다.

한국 전쟁 때는 피난민과 함께 전국 각지의 의사들이 대거 제주도로 들어왔다.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 병원 4개소, 진료소 30개소가 세워져 16개 반 64명의 의료진[의사 16명, 조수 32명, 간호원 16명]이 파견됐다.

1953년 1년 동안의 취급 환자 수는 연 17만 3,695명이었고, 1,457명의 감염병 환자가 발생해 71명[장티브스 2명, 발진티브스 60명, 천연두 9명]이 사망했다.

1951년 1월 36 육군 병원 소속 서울대 병원 이문호(李文鎬) 등 피난 팀들은 한림면에 제2 국민병[대기 병력]을 치료하는 제주도 장정 구호 병원을 설립했다. 여기서 그 해 7월까지 5개월 동안 징집 장병의 신체검사와 주민 진료를 담당했다.

의료진과 의료 물자가 부족하던 한국 전쟁 당시 제주 지역 의료계는 전시 체제의 구호 병원과 가설 진료소를 설립하였고, 육군 제1 훈련소 군진(軍陣) 병원의 영향을 받아 제주도 의료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의사 상호간의 의학 정보 교환뿐만 아니라 제주도 내 민간 의료 기관에 환자들이 왕래하고, 의약품과 기술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지역 의사들의 의식이 개조돼 의료 발전에도 기여했다.

[전문 과목의 등장]

제주도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전문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거의 모든 전문 과목이 들어선다. 1960년대에 산부인과는 강치명(姜治明)의 서울 산부인과 의원[1966], 외과는 김형규(金亨奎)의 김형규 외과 의원[1968]이 들어섰다.

1970년에는 이제민(李濟民)의 제민 신경정신과 의원[1971], 김용국(金用國)의 김용국 소아과 의원[1973], 정웅영(鄭雄泳)의 정웅영 비뇨기과 의원[1973], 최웅길(崔雄吉)의 최웅길 신경외과 의원[1975] 등의 병원이 생겨났다. 내과 분야의 경우, 광신 의원 홍순억(洪淳億)이 내과 자격증을 취득[1957]했으나 내과 간판을 걸지 않았다.

1973년에는 김병찬(金炳贊)이 제주도립 제주 병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제주 의료계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아과를 개척한 이는 이동일(李東一)로, 소아과 전문의는 아니었다. 1976년에는 안과, 정형외과, 피부과가 등장했다.

안과는 이융문(李隆文)[1942~1984, 이융문 안과 의원]이, 정형외과는 서영동(徐永東)[영동 의원]이, 피부과는 김순택(金淳宅)[세종 의원]이 각각 개척했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김대운(金大運)이 김 이비인후과 의원[1977]을 개원했다. 방사선과는 이유근(李侑根)이 1979년 4월 이유근 방사선과 의원을 제주도 내 최초로 개원하였다.

마취과는 이진근(李鎭根)이 1978년 제주도로 들어와 프리랜서로 활약하다가 1980년 1월 이진근 마취과 의원을 개원했다. 새 의료법에 의해 마취과가 마취통증의학과로 바뀐 후 2002년에는 김용석이 김용석 마취통증의학과 의원을 개원했다.

1980년대에 새 분야를 개척한 사람은 성형외과의 전신권(全信權)으로 1988년 3월 전신권 성형외과 의원을 개원했다. 이외에는 모두 1990년대에 개원했다. 흉부외과는 김승철(金承澈)의 김승철 흉부외과 의원, 예방의학과는 강창의(姜昌義)의 성라 의원[1991], 결핵과는 박재남(朴在南)의 박재남 의원[1992] 등이 들어섰다.

해부병리과 의사로서 처음 개원한 이는 동남 의원의 정연재(鄭然載)이다. 신경과로는 김창우의 김창우 신경과 의원이 처음 개원되었다. 최초의 전문의 봉직의로는 한국 병원에 가정의학과를 개설한 강형윤(姜炯玧), 한라 병원에 해부병리과를 개설한 김효민(金孝民) 등이 있다.

[제주도 내 의사 수]

제주도 내 의료 기관의 의사 수는 1953년 47명에서 1993년 349명[의사 235명, 치과의사 86명, 한의사 28명]으로 7.4배 증가했으며, 1994년 1년 사이에 424명[의사 286명, 치과의사 107명, 한의사 31명]으로 늘어났다.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946년에 1만 3,320명이었으며, 1974년에는 4,500명당 1명꼴이었다가 1990년 말에는 2,057명, 1993년 말에는 1,464명으로 떨어졌다. 치과 의사를 제외할 경우, 1994년도 의사[의사 및 한의사] 1인당 주민 수는 1,623명에 달해 전국 평균 670명의 2.4배를 웃돌았다.

의사 증가율은 최근 5년 사이에 1990년도 대비 128% 늘어나 인구 증가율을 앞서 해마다 양적 증가 현상을 보였다.

2004년 말 현재 제주도 의사회에 신고한 의사 수는 556명[전국의 0.8%]이며, 제주시에 404명[남 358명, 여 46명], 북제주군에 39명[남 38명,여 1명], 서귀포시에 85명[남 75명, 여 10명], 남제주군에 28명[남 26명, 여 2명] 등 제주시에 전 회원의 72.7%가 분포하고 있다.

2006년 말에는 도내 의사 수 616명 가운데 521명[84.5%]이 제주시에서 진료를 보고 있어 제주시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제주도 내 환자들의 수진(受診) 경향]

1994년도 제주 지역 의료 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제주도민은 연인원 161만 1,661명으로 제주도민 1인당 3.1회꼴로 진료를 받았으며, 총 진료비는 385억 9,300만 원으로 1인당 평균 7만 5,000원이 지출됐다.

이들 중 제주도 내 의료시설을 이용한 연인원 수는 157만 507명으로 전체 진료 환자의 97.4%를 차지했고, 325억 4,032만 1,000원[전체의 84.2%]을 의료비로 지출하여 제주도민 1인당 평균 3.05회꼴로 진료를 받고 6만 3,200원씩 지출했다.

3차 진료를 위해 서울 등 육지 의료 기관을 찾은 환자는 1993년 2만 647명으로 도민 100명당 4명꼴이었다가 1994년 말에는 연인원 4만 1,154명으로 늘어 60억 8,578만 원의 의료비를 지출했다.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제주도 내 의료 기관에 비해 2.5배나 높았다.

[공공 보건 의료 기관]

공공 의료 사업 기관으로 2개소의 지방 공사 의료원[제주 및 서귀포], 제주도 적십자 혈액원과 129 응급 정보 센터, 4개 부속 의원[한국 건강 관리 협회, 장애인 종합 복지 회관 재활 의원, 한국 한센 복지 협회 제주도 지부 복지 의원, 경찰 공제회 소길 의원) 및 각급 보건소와 2개 모자 보건 센터[북제주군 및 남제주군]가 있다.

또한 14개 보건 지소[중문, 애월, 구좌, 김녕, 조천, 한경, 추자, 우도, 대정, 성산, 표선, 안덕], 특정 지역 성병 간이 진료소[건입동], 민간 자선 기관인 성 이시돌 의원 등이 있다. 상설 의무실 운영 기관으로는 제주 소년원, 제주 교도소, 원광 요양원, 시립 희망원, 제주 양로원, 보건과 보건 환경 연구원 등이 있다.

1950년대에는 제주도립 병원과 서귀 분원 등 공공 의료 기관이 급격히 늘어났고, 서귀포에 남군 보건소, 한림에 북군 보건소, 각 읍·면에는 공의가 배치되기도 했다. 제주 적십자 의원은 1956년 8월 1일에 문을 열었다가 1968년 3월 1일에 폐쇄됐다.

보건소는 보건 행정을 합리적으로 조직·운영하고 보건 시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여 국민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된 의료 기관이다. 「보건소법」이 시행된 1957년에 제주도립 보건소가 설치되었고 제주시 보건소로 발전했다.

제주 지역에는 1962년 9월 24일 북제주군 보건소 설치를 시작으로 1963년 3월 제주시 보건소, 1964년 2월 5일 남제주군 보건소, 1983년 4월 25일 서귀포시 보건소가 각각 문을 열었다가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4개 보건소가 각각 제주 보건소, 남부 보건소, 서귀포 보건소, 북부 보건소로 기관 변경을 하고 제주특별자치도 직속 기관으로 편입됐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도내 보건 행정 기관은 4개의 보건소, 보건 지소 12개소, 보건 진료소 46개소 등 62개소에 이른다. 제주 보건소는 1999년 12월 제주시 도남동 청사로 신축, 이전하여 2005년 1월 5개 계와 2007년 3월 서부 보건 지소로 기구를 확장했다.북부 보건소는 1959년 한림에서 북제주군 보건소로 설립되어, 1987년에 모자 보건 센터와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4개의 계(係)와 7개의 보건 지소, 낙도와 중산간 지역에 23개 보건 진료소를 갖춰 각종 보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제주도 의료 기관의 성장 추세]

빠른 속도로 제주시 관내 의료인의 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의원 수 역시 많아졌다. 2006년 말 현재 제주도 내 의사 수는 607명[남 530명, 여 77명]이며 그중 절반 정도가 개원을 한 상태이다.

제주도 내 한의사는 1952년 6명뿐이었으나 2004년 4월 현재 87명이 등록됐다. 2004년도 제주도 내 간호사는 1,271명[여 1,257명, 남 14명]이다. 2004년도 제주시 의약인 수는 의사 395명, 치과 의사 107명, 한의사 63명, 조산사 8명, 간호사 969명, 약사 201명, 의료 기사 351명에 달했다.

북제주군 관내에는 병원 1곳, 의원 44곳[의원 28곳, 치과 10곳, 한의원 6곳], 보건기관 31곳, 의약 업소 35곳이 있었다. 한림읍에 병원 1곳과 의원 9곳, 치과 3곳, 애월읍에 의원 5곳, 치과 3곳, 구좌읍에 의원 6곳, 치과 1곳, 조천읍에 의원 6곳, 치과 2곳, 한경면에 의원 2곳, 치과 1곳이 들어섰다.

한의원은 한림읍, 애월읍, 구좌읍에 각각 3곳, 조천읍에 2곳, 한경면에 1곳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로 행정 구조가 바뀌면서 제주도 내 의료 기관은 2006년 말 현재 304곳이고, 제주시에는 병원 8곳과 의원 229곳[구 제주시 200곳, 구 북제주군 29곳] 등 237곳[77.3%]이 몰려 있다.

제주 의료원을 인수한 제주 대학교 병원은 2005년에 병원 신축 공사를 시작했고, 한마음 병원, 의료 법인 한라 병원, 의료 법인 혜인 의료 재단 한국 병원, 의료 법인 중앙 병원 등이 증축되어 병상 수를 늘렸다. 또한 제주 한방 병원과 제주도 노인 전문 병원이 새로 등장했다.

그동안 종합 병원의 기능을 해왔던 지방 공사제주도 제주 의료원은 2004년 노인 및 치매 병원으로 기능을 특화하기 위해 장소를 이전하여 신축, 개원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주도 내 의료 기관 사이에는 시설 확충과 첨단 의료기기의 도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병원마다 전문과가 늘어났으며 첨단 의료 장비와 특수 진료 클리닉을 개설하여 종합 병원의 기능을 하면서 환자 진료에 임하고 있다. 기존의 진료 방식을 유지하여 수지 타산을 맞추지 못하는 의원들이 늘어났고, 비만 클리닉, 피부 미용 등 전문과별 특성을 떠나 특화 분야를 표방하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한방 진료에 대한 국민적인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의원 수는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하게 늘어났고 조산원 역시 규모를 확장하면서 새로 생겼다. 그러나 암 환자를 포함한 특수 질환의 경우 진료나 수술을 목적으로 여전히 육지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제주도 내에도 의료진과 시설을 제대로 구비한 3차 진료 기관의 등장이 요구되고 있다.

[의료 기관의 전망]

제주 지역의 의료 인력은 2011년에 활동 의사 1인당 최소 추계 인구수 510~715명이 될 전망이며[인구 57만 9,000명, 연평균 증가율 5~8%], 최대 추계는 571~801명으로 예측[인구 64만 8,585명, 연평균 증가율 5~8%]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11년 제주도 내 의료 기관은 670개소, 의료 인력은 4,907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제주 대학교 병원이 500병상 규모로 2008년까지 증축하게 되면, 도외 유출 환자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종합 전문 요양 기관[3차 의료 기관]의 역할을 할 것이며, 대학 병원 고유의 연구 기능과 함께 공공 보건 의료 사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의료 개방과 외국계 병원 유치 등 의료 산업화의 비전을 갖고 있다. 국제 자유화 도시 추진에 따른 외국인 전용 진료 센터, 관광과 연계한 종합 검진 시설, 실버 산업과 연계한 노인 진료 시설 등 제주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의료 기관이 기여할 것을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 지역 의료 기관들이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고 외국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의료 제도나 단일 체제의 의료 보험 제도를 개혁하여 영리 병원을 허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3.17 내용 수정(현행화) [군병원의 영향] 전염병 환자가 → 감염병 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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