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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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濟弘 |
영어음역 | Yun Jehong |
이칭/별칭 | 경도(景道),학산(鶴山),찬하(餐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유정 |
[정의]
조선 후기 제주경차관을 지낸 문신이자 문인 화가.
[가계]
본관은 파평. 자는 경도(景道), 호는 학산(鶴山)·찬하(餐霞). 아버지는 윤석복(尹錫復)이다.
[활동사항]
1792년(정조 16) 생원시에 합격하고 1794년(정조 1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을 거쳐 1801년(순조 1) 정언이 되었다. 1806년(순조 6) 김구주(金龜柱) 사건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창원에 유배되었다.
1825년(순조 25) 제주경차관의 임무를 마치고 이임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풍천부사로 재임 중 암행어사 홍희석(洪羲錫)의 탄핵으로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1840년(헌종 6)에 대사간에 복직되었다.
문인 화가로 당대에 이름이 나 있었다. 특히 지두화(指頭畵)를 잘 그려 여러 폭의 지두화첩을 남겼다. 교우 관계가 비교적 넓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활동 사항은 알려진 바가 없다.
정선(鄭敾)·심사정(沈師正)·이인상(李麟祥) 등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비교하였고, 그들의 작품을 모방하여 그린 적도 있다고 한다. 이재관(李在寬)·김수철(金秀哲)·김창수(金昌秀) 등으로 이어지는 담채법과 바위 표현법은 조선 후기 문인화풍의 한 계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술 및 작품]
작품에 「고사도(高士圖)」, 「옥순봉(玉筍峰)」, 「모루관폭도(茅樓觀瀑圖)」, 「산수인물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