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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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潭洞先史-遺蹟 |
영어음역 | Yongdam-dong Seokgwangmyo Yujeok |
영어의미역 | Stone-Vault Tombs in Yongdam-dong |
이칭/별칭 | 용담동 고분,용담동 적석석곽묘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월성마을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강창화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월성마을에 있는 철기시대의 적석석곽묘.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용담동선사무덤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20~30㎝ 두께의 경작 표토층과 20~30㎝ 두께의 무유물층 아래에 있는 유물 포함층에서 적석 유구 묘역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묘역의 범위는 동서 길이 18m, 남북 길이 8m이다.
묘역은 한가운데에 있는 동서 방향의 긴 석렬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 두 구역으로 나뉜다. 확인된 유적은 남쪽 구역에서 고인돌 하부 구조처럼 보이는 석곽묘 3기, 북쪽 구역에서 옹관 6기와 폭이 좁은 장방형 석곽묘 1기이다.
[형태]
북쪽 묘역은 남쪽 묘역과 마찬가지로 할석을 깔았고, 대체로 동서로 긴 장방형을 하고 있다. 남아 있는 묘역은 동서 길이 15.6m, 남북 너비 3.6~5m, 총 면적 약 60㎡로, 남쪽 묘역의 2배 가까이 된다.
이 묘역에는 7기의 무덤이 있다. 장방형의 공간을 돌로 둘러싸서 만든 일종의 석곽묘 1기와 곽지리식 적갈색토기 항아리를 이용한 독무덤 6기가 확인되었다. 그 밖에 원래 석곽묘일 가능성이 있는 유구가 있으나 윤곽의 확인이 어려운 예도 있다. 석곽묘는 전체 묘역 중 다소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그 주위로 일정한 형식 없이 독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이 북쪽 묘역은 남쪽 묘역보다 20㎝ 이상 더 높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상부로 가해진 후대의 교란 정도가 심하였다. 이에 석곽묘의 구조가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깊이 1m 정도에 깊숙이 터를 잡은 합구식 독무덤 1기를 제외하면 완형을 유지한 독무덤은 없었다.
남쪽 묘역에서 나온 공렬 토기 복합군은 제주도 여러 유적에서 확인 된 바 있다. 공렬 토기가 남한 지방에서 일대 유행한 토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용담동의 토기는 제주도에 이 문화가 유입된 직후의 토기 문화가 아니라 이미 한 단계 지난 토기로, 나름대로 토착화 과정을 거친 토기이다. 한편, 남한 지방의 공렬토기가 바로 유입된 단계의 제주도 유적으로는 대정읍 상모리 유적의 예가 있다.
토착화된 토기와 전혀 다른 형식의 곽지리식 토기가 전에 없던 독무덤이라는 점에서 묘제 및 철기 문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점은 총체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뜻한다. 그 변화는 새로운 주민의 이주이거나 공렬 토기를 사용한 남쪽 묘역 집단의 후손들이 일정 기간 새로운 외부 문화를 받아 들여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입증하려면 외부 문화의 유입 및 자체 발전의 과정을 설명해 주는 자료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제주도에서 그런 자료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전자의 경우를 입증하려면 새로운 주민이 이주해왔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곽지리식 토기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분명한 자료가 없다.
[출토유물]
유물은 묘역의 남쪽과 북쪽 구역에서 모두 출토되었다. 남쪽 구역에서는 공렬 토기·구순부각목토기·적색과 흑색의 마연 토기가 출토되었다. 북쪽 구역에서는 곽지리식 토기와 함께 다량의 철제 유물과 유리 구슬 제품이 출토되었다. 이 두 구역의 유물이 뚜렷한 시기 차를 보이는 것으로 볼 때, 남쪽 구역이 먼저 축조된 후에 북쪽 구역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용담동선사무덤유적은 탐라 소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세력 집단의 출현 근거로 볼 수 있다. 용담동선사무덤유적은 제주시 최초로 확인된 유력 세력의 집단묘로 파악된다. 북쪽 묘역의 주인공들은 남쪽 묘역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토기와 철기 및 무덤 양식을 소유한 주민 집단으로 판단된다. 그 변화의 범위와 정도로 미루어 볼 때, 새로운 계통의 주민 이주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전 단계의 주민과 동일 계통이면서 외부 문화를 새롭게 받아들인 주민 집단의 무덤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는 전대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 석렬을 정연하게 두른 점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1990년 5월 30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