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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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利化 |
영어음역 | O Ihwa |
이칭/별칭 | 오이현(吳彛炫),한수(漢秀)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2835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금실 |
성격 | 승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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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2835 |
성별 | 남 |
생년 | 1903년 |
몰년 | 1950년 |
본관 | 화순 |
대표경력 | 관음사 주지|제주교구 교무원 재무국장|조선불교중앙대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에 제주의 불교를 발전시킨 승려.
[개설]
본관은 화순. 속명은 이현(彛炫), 법명은 한수(漢秀), 법호는 이화(利化). 아버지 오인규와 어머니 김계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나 주변에서 “훌륭한 불자(佛子)가 될 인물이다.”라고 했다 한다. 1914년 10월 15일에 해남 대흥사에서 안도월을 은사로, 박만하를 사미계사로 득도했다.
10년 후 다시 대흥사에서 이회명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같은 해에 대흥사에서 선 수련을 위한 안거에 들어갔다. 1930년 5월 6일에 대선법계(大禪法階)를 받았고 1935년 11월 4일 중덕법계(中德法階), 그 후 대덕법계(大德法階)를 품수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겪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1950년 음력 5월 25일 제주읍 이도리 관음사 포교당에서 48세로 입적하였다.
[활동사항]
대흥사 제주설교소의 서기와 재무원, 대흥사 본말사 평의원, 대흥사 제주포교당 성내 출장소 서기, 대흥사 법화출장소 감원, 대흥사 불탑출장소 감원, 대흥사 제주도 포교당 감원과 포교사, 대흥사 평의원, 대흥사 포교사, 관음사 2대 주지, 제주교구 교무원 재무국장, 조선불교 중앙대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제주불교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39년 제주불교연맹 활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1945년 12월 관음사 포교당에서 열린 조선불교혁신전도승려대회에 이일선, 원문상 등과 함께 참여하여 왜색 불교와 구습에 물든 불교를 개혁하려는 혁신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