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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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創造-女神- |
영어음역 | Jejureul Changjohan Yeosin Seolmundaehalmang |
이칭/별칭 | 선문대할망,설명두할망,설명뒤할망,세명뒤할망,세명주할망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현용준 |
[개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여신이다.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는 산·바다·섬·바위 등의 자연물이 많아서 제주도 전체가 설문대할망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이다. 설문대할망 설화는 신이담(神異譚) 중에서 초인담(超人譚)에 속하며 거인(巨人) 설화로 분류된다.
오늘날 전해지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제주도민이라면 낯설지 않다. 그만큼 일반적이라 할 만한데, 그 주인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면 머뭇거린다. 그만큼 전승되는 이야기가 길지 않고, 논리 정연한 구조를 갖추지 않은 채 파편화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설문대할망은 다른 전설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설화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여신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이름들]
설문대할망에 대한 가장 오래된 근거 자료는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이다. 1770년(영조 46) 과거에 응시하려고 배를 탔다가 표류하던 중 멀리 한라산이 보이자 선인(船人)들이 ‘백록선자(白鹿仙子)’와 ‘선마선파(詵麻仙婆)’에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라산 산정 호수를 백록담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백록선자는 한라산신을, 선마선파는 설문대할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설문대할망은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이에 대한 구체적 자료는 없다. 장한철의 『표해록』에서 선마선파 또는 선마고로 불린 것 이외에 다른 용어는 없고, 1960년대에 와서 수집된 자료에는 선문대·설문대·세명두·세명뒤 등으로 나타나고 있어 다양하게 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조 여신으로서의 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오름·섬·기암 등의 제주 지형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고 국토 창건이라는 신화적 성격이 있다고 하여 천지개벽 신화의 창조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장한철의 『표해록』에서 표류인들이 기원했던 ‘선마고’가 설문대할망과 동일 인물이라면 민간신앙의 대상인 셈인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신격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오랜 세월동안 구전 신화가 전승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격 요소가 사라진 점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전설·민담으로서의 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 설화의 내용에서 중시되는 것은 증거물이다. 생활 방식에서 보면 빨래할 때 어찌하였다는 자료가 많다. 동쪽에서는 우도와 일출봉, 서쪽에서는 가파도와 마라도를 좌우 발판으로 하여 남쪽의 지귀도나 북쪽의 관탈섬을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하였다고 하거나, 한라산의 백록담이 움푹 패인 자리에 머리를 대고 베개로 삼아 누우면 북쪽으로는 관탈섬에 다리가 닿고, 남쪽으로는 문섬·범섬에 닿았다고 하여 직접적으로 크기를 설명하기보다 상상 속에 맡기면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섬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제주시 오라동 한내(한천)에 있는 고지렛도라는 곳의 모자 모양으로 구멍이 패인 큰 바위를 설문대할망이 썼던 감투라 하거나, 큰 바위가 띄엄띄엄 몇 개 서 있으면 할머니가 솥을 걸어 밥을 해 먹은 바위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키가 너무 커 놓으니, 할머니는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였으나 1동이 모자란 99동 밖에 모으지 못하여 완성할 수 없게 되자, 할머니는 다리를 조금 놓아가다가 중단해 버렸다. 그 자취가 조천면 조천리와 신촌리 앞바다에 있다 한다. 바다에 흘러 뻗어간 바위 줄기(‘여’라 함)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전설적 속성을 띄고 있다. 전설로서 갖추어야 할 증거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설문대할망 설화는 민담적 성격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설문대할망과 설문대하르방을 부부로 상정하여 성기로 물고기를 몰아다 잡는 이야기로까지 변형시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설화는 제주도의 자료만으로는 결론 내리기가 어렵다. 한국 본토나 일본·중국 등의 설화를 참고로 하면, 이 설화는 일본의 부사야마[富士山]을 만들었다는 다이다라보오시[大太法師], 오키나와의 거인인 아만츄우, 중국의 거인 반고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세계의 중심은 제주도]
설문대할망은 기존에 있던 지형지물을 활용할 뿐 아니라 새롭게 만들기도 하였다. 입고 있는 치마에 흙을 가득 담고 이동하여 한라산 자리에 몇 번 쏟아 부어 오늘의 한라산을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치마의 터진 틈으로 흘러내린 흙이 여기저기 떨어져 오름이 되었다.
그처럼 키가 큰 설문대할망도 죽음을 면하지는 못했다. 제주도 곳곳에 깊다는 곳을 찾아가 들어서 보니 용연에서는 발목까지 닿고, 서귀포 홍리물에서는 허벅지까지 닿더니 물장올에 들어서서는 그만 끝없이 빠져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래서 물장올을 ‘창터진 물’이라 한다.
이것은 제주도민들이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전승하면서 인식하는 세계관이다. 설화를 통한 세계 인식이라 할 만한데, 제주민들이 생각하는 세계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제주를 중심으로 우도, 제주를 중심으로 가파도와 마라도, 제주를 중심으로 관탈섬, 이것이 확대되어 제주를 중심으로 추자도까지 나아간다. 전승민들에겐 오늘날처럼 제주도를 한반도의 주변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게다가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통해 물 위에 떠서 돌아다니는 국토 부동(國土浮動) 관념을 갖고 있었다고 하겠다. 비양도가 물 위에 떠 한림 앞바다로 다가오다가 한 여인이 ‘섬이 떠 온다’고 소리치자 들켰다며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대로 멈춰버리게 되었다는 것도 같은 관념의 표현이라 하겠다.
[재탄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여신]
설문대할망이 신화 속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문대할망의 활동 사항을 통해서 볼 때, 신화적 인물인 셈이다.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국토의 창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설문대할망은 본토의 마고할미 같은 거녀(巨女) 설화 계통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늘날 전승은 신화이기보다는 전설적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 게다가 다른 전설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설화로 재탄생하고 있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제주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던 설문대할망의 탄생 과정이 삽입된다든가, 설문대할망이 여성이기에 배필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의해 설문대하르방을 만들어내고, 오백장군이야기에 설문대할망이 개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거녀였기에 그만큼의 아들들을 낳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한 것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 전승의 양상을 살펴보자.
“오백장군의 어머니 설문대할망은 굉장히 키가 클 뿐만 아니라 힘도 세었다. 흙을 파서 삽으로 일곱 번 떠 던진 것이 한라산이 되었으며, 도내 여러 곳의 산들은 다 할머니가 신고 있던 나막신에서 떨어진 한 덩이의 흙들이다. 그리고 오백 형제나 되는 많은 아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아들에 대해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아들들이 도둑질하러 다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이려고 죽을 쑤다가 잘못하여 그 커다란 가마솥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 먹기 시작하였다. (중략) 그리하여, 남편과 또 그 많은 아들들을 잃어버린 설문대할망은 홀몸이 되었다.”
심지어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설문대할망은 옥황상제의 말잣딸로서 제주도를 창조한 여신이다. 설문대할망은 천상에서 부왕의 명을 잘 받들어 신들과 궁녀들에게 밥과 물을 잘 주고 효성도 지극한 여신이었다.” 라고 하여 설화가 아닌 창작으로까지 변모되고 있다.
설문대할망이 부모의 뜻을 거슬려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는 데, 이는 그 구조가 제주시 삼도동 소재 각시당 본풀이와 유사하기 때문에 설화가 아닌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창작품이다.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설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연구자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