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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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於等浦 |
영어음역 | Eodeungpo |
영어의미역 | Eodeungpo port |
이칭/별칭 | 어등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광민 |
성격 | 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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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헌 |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남사일록(南槎日錄)』|『남사록(南槎錄)』|『탐라록(耽羅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었던 포구.
[개설]
어등포는 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한갯목’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명칭유래]
어등포는 조선 후기에 어등포리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구좌읍 행원리를 두고 어등개라고 한다. 그렇다고 행원리의 마을에 어등개라는 포구나 지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등개는 바로 포구 이름이 아닌 마을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등개 즉 행원리에는 터우매는개, 한갯목, 그리고 짚은개라는 세 개의 포구가 있었다. 터우매는개와 짚은개는 터우나 겨우 맬 정도의 작은 곳이였으니, 어등포는 지금의 한갯목을 지칭하는 이름일 것이다.
[위치비정]
포구의 중심 칸살이 ‘한개’이고, 그리로 이르는 길목이 ‘한갯목’이다. 그래서 ‘한갯목’은 ‘한개’와 그 목을 합친 포구를 말한다.
서북쪽으로 나 있는 ‘막나라코지’와 ‘빌렛기’ 사이 깊게 600m 정도 후미져 들어간 ‘안소’에서부터 ‘밧소’, ‘한개’, 그리고 ‘한갯목’으로 이어진다. ‘안소’ 와 ‘밧소’ 사이에는 ‘더벵이물’로 이르는 길과 ‘밧소’와 ‘한개’ 사이에는 ‘셍이코지’에서부터 지금의 조선소(造船所)까지 돌다리가 놓였다.
그렇기에 ‘밧소’와 ‘한개’를 가로지르는 길이 나기 전에는‘밧소’도 포구로 이용되었다.
‘한개’와 ‘한갯목’은 길목이 나 있는 방파제로 칸살이 나눠졌다. ‘한개’가 조간대(潮間帶) 하층에, 그리고 ‘한갯목’은 점심대(漸深帶)에 걸쳐 있다.
그래서 사리 썰물 때에는 ‘한개’로 배를 들여놓을 수 없다. ‘한갯목’ 칸살에 있는 ‘뚝박은여’를 보조 포구로 삼았다. ‘뚝’은 배를 매어 둘 때 닻줄을 묶어 두려고 말뚝을 박아 놓은 ‘여’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한개’는 어떤 바람이나 물때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포구였다.
[관련기록]
이증(李增)은 『남사일록(南槎日錄)』에서, 어등포(於等浦)는 무주포(無注浦)와 좌가마포(佐哥馬浦) 사이에 있다고 하였다. 또 김상헌(金尙憲)은 『남사록』에서, 어등포를 두고 김녕포(金寧浦)와 함께 “대강(大舡)도 댈 수 있다. 상선(商船) 역시 통한다”고 하였다.
어등포는 제주도 북쪽에 있는 다섯 개의 연륙 포구(連陸浦口) 중 그 하나라고 하였다. 또한, 그 당시 별방 방호소(別防防護所) 소속 전선(戰船) 1척과 함께 병선(兵船)도 감출 수 있다고 하였다. 『탐라록(耽羅錄)』(이형상의 『甁窩全書』권9)은 ‘어등포(魚登浦)의 저녁 모습’은 제주 8경(濟州八景)의 하나라고 하였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에는 어등포리(魚登浦里) 앞쪽과 백석곶(白石串) 동쪽에 어등포가 있다고 하였다. 백석곶은 흰돌코지의 한자 차용의 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