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95 |
---|---|
한자 | 安士仁 |
영어음역 | An Sain |
분야 | 생활·민속/민속,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현용준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무속인.
[개설]
1928년 순흥안씨 집안, 21대 세습무인 임생(任生)의 장남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무계(巫系) 세습을 살펴보면 안씨 집안은 본래부터 무가(巫家)가 아니었다. 21대조가 제주로 낙향하여 애월읍 어음리에 정착,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하였고, 12대조가 애월읍 수산리로 이주하였으며, 증조부가 제주시 오라동으로 이주하였다. 이때 증조부가 구좌읍 하도리 19대째 세습 무계(世襲巫系) 집안의 딸 고씨(高氏)의 미모에 반하여 혼인하였다.
증조부는 일생 무업(巫業)을 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어머니의 무업을 계승하여 심방이 되었고, 다시 무업이 부모에게 이어져 결국 21대 세습무계 집안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무계(巫系)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굿판을 따라다니며 성장하여 자연스럽게 굿의 기능을 익히게 되었다.
심방이 천시되고 굿이 미신 타파의 대상이 되던 환경에서 스스로 심방임을 자부하며, 굿을 지키고 알리고 가르친 제주의 대표적 심방이다. 1990년 10월 4일,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활동사항]
1935년 제주북공립국민학교에 입학, 1941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동교 고등과(高等科) 1학년에 입학하였고, 16살에 제주북공립국민학교 고등과 2학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1945년 제주군사비행장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다음해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멩두(巫具)의 인계를 걱정하자 이를 이어받아 심방이 될 것을 약속했으며, 그 후 심방이 되어 굿을 시작했다.
1950년 23살의 나이에 입무(入巫) 의례인 신굿을 하면서 정식 심방인 하신충(제주특별자치도 심방의 계급 중 맨 하위 계급)이 되었다. 이후 제주시 용담2동의 본향당인 스락당의 매인심방[專屬巫]으로 활동했는데, 목소리가 좋고 춤이 고와 심방으로서 명성이 높아갔다. 1963년에는 다시 신굿을 하여 중신충이 되었다.
1966년에는 제주민속예술단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때에 제주도의 놀이굿인 「세경놀이」를 지도하여 공보부장관상을 타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이듬해에는 제주민속예술단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때 제주도의 놀이굿인 「영감놀이」를 지도하여 대통령상을 받는 데 공헌하였다.
1968년에는 제주민속예술단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때 영등굿놀이를 지도하여 국무총리상을 받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굿 기능이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음을 인식하여 학자들의 굿 조사, 채록에 협조하여 무가를 문자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1976년 49살 때는 신굿을 하여 심방의 최고위인 상신충에 올랐다. 무슨 굿이든 못하는 게 없어 제주시와 북제주군 일대의 굿을 도맡아 하였다. 1980년 11월 17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다음해에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소멸 위기의 당굿을 계승, 보존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매년 칠머리당굿을 연행하고, 여러 전수생에게 그 기능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