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69 |
---|---|
한자 | 沈連源 |
영어음역 | Sim Yeonwon |
이칭/별칭 | 청송(靑松),맹용(孟容),보암(保庵),충혜(忠惠),청성부원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 시호는 충혜(忠惠). 아버지는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1465~1504]이며,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이다.
[활동사항]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인(門人)이다. 1522년(중종 17)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정자를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檢閱)·대교(待敎)·봉교(奉敎) 등을 역임하였다.
1526년(중종 21) 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과 공조·예조·사복시의 부정(司僕寺副正)을 거쳐 1533년(중종 28) 경상우도진휼경차관에 뽑혀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후 의주부사에 올랐다.
1534년(중종 29) 9월 송인수(宋麟壽)[1487~1547]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537년(중종 32) 6월에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1534년 겨울 제주목사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성(南城) 안에 향학당(鄕學堂)을 건립하였고, 1536년(중종 31) 가을에는 교수 이의영(李義英)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여 제주향교의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539년(중종 34) 예조참판으로 진향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에는 성균관대사성, 1542년(중종 37) 특진관·형조참판, 1543년(중종 38) 한성부판윤, 1544년(중종 39)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1545년(명종 즉위년) 호조판서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하였다.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나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청성군(靑城君)에 봉해진 뒤 감춘추관사로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47년(명종 2) 좌참찬·예조판서·우찬성·판의금부사·좌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오른 뒤 1551년(명종 6) 영의정이 되었다.
[학문과 사상]
문장에 능하고 일 처리에 세밀하였으며,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리에 밝아서 질문을 받으면 직접 자신이 목격한 것처럼 막힘없이 응대하였다. 유사시 가장 요충 지역이라 생각하여 제주도의 산천과 굴곡 및 고저를 지도로 그려 두었는데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김수문(金秀文)[?~1568] 제주목사가 이 지도로 방어책을 세워 잘 막았다.
[저술과 작품]
「제주향교 명륜당 중수기」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1551년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