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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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樂洙 |
영어음역 | Sim Naksu |
이칭/별칭 | 경문(景文),일환재(一丸齋),은파(恩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문(景文), 호는 일환재(一丸齋) 혹은 은파(恩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1593~1662], 아버지는 심형운(沈亨雲), 어머니는 승지 김고(金槹)의 딸이다.
[활동사항]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가정이 가난하였으나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1775년(영조 51)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성균관전적을 거쳐 1779년(정조 3)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780년(정조 4) 부수찬을 지냈으며, 교리로 있을 때 홍국영(洪國榮)[1748~1781]의 죄를 탄핵하여 한때 삭직되었다.
1786년(영조 10) 고부재자관(告訃齎咨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87년(정조 11) 홍문관수찬으로 있을 때 김구주(金龜柱)[1740~1786]를 탄핵하다가 흥양현(興陽縣)에 유배되었으며, 1793년(정조 17)에 홍문관수찬으로 재기용되었다.
1793년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濟州慰諭按覈巡撫試才御使)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가 1794년(정조 18) 3월 제주도에 기근이 들자 이철운(李喆運)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1794년 10월 유구(琉球) 사람이 제주도에 표류하였을 때 질병으로 인하여 잘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느껴 떠났다.
1794년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로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여 문과에 7명, 무과에 3명 등 10명을 합격시켰다. 1794년 의사(義士) 오홍태, 효자 박계곤, 정부 박씨, 충비(忠婢) 고소락의 가문을 정표(旌表)하고 정녀(貞女)인 사비(私婢) 옥매의 집안에 요역을 면제해 주었다.
영주관 동쪽에 대일관(大一觀)을 건립하여 임금의 윤음·어필·은교 등을 봉안하는 장소로 삼았다. 사후에 1801년(순조 1) 수렴청정을 하게 된 정순왕후에 의해 그녀의 오빠 김구주를 탄핵했던 일로 벼슬이 추삭되었다가 1807년(순조 7) 아들 심노숭(魯崇)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저술과 작품]
저서에 시문집인『은파산고(恩坡散稿)』가 있다. 11권 9책으로 된 필사본인데,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출간된 경위나 연대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심낙수는 호락논쟁(湖洛論爭: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에 관한 논쟁)을 세도의 화근이라 보고 시파의 입장에서 벽파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전기를 남겼으며, 그 본말의 기록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또한 제주 유생들의 시취 내용과 시문 등이 수록되어 있는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을 간행하였으며, 대일관을 건립하고 지은 「대일관기(大一觀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