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41 |
---|---|
한자 | 晨星女學校 |
영어음역 | Sinseong Yeohakgyo |
영어의미역 | Sinseong Girls'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있었던 여자 교육 기관.
[변천]
제주 성당에서 활동하던 라크르(Lacrouts, Marcel)[1871~1929] 신부는 포교 활동의 일환으로 1909년 10월 18일 신성 여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1910년 5월 제주 읍내에 약 40명의 학생을 모아 신성 여학교[현 신성 여자 중학교·신성 여자 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라크르 신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한국인 수녀 2명을 초빙하여 신성 여학교를 운영하였다.
개교 당시 약 40명이라는 학생은 당시 일본인 여학교의 개교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확보하였던 인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본인 여학교로 빠져나갔던 학생 7명 가운데 1명만이 되돌아 왔으나, 당시 일본인 여학교의 재학생이 25명이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신성 여학교에 대한 인지도는 그리 낮은 편이 아니었다.
1910년 7월 학생이 약 50명으로 증가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외교인(外敎人)의 자녀들이었다. 이는 천주교에 관심이 없거나 혹 반대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자식을 공부시킬 요량으로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 준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선교사들의 활동에도 제한을 받으면서 라크르 신부는 일제 당국으로부터 교사(校舍)를 넘겨 줄 것을 명령받았다. 이에 따라 제1회 졸업생만을 배출한 신성 여학교는 1916년 7월 15일 폐교되고 말았다.
[교육 활동]
신성 여학교의 교육 과정은 초등 과정 4년, 중등 과정 1년이었다고 하나 이 체제는 후일 정비된 것이며, 초창기에는 유아 및 보통학교 초급반 수준이었다. 여학교를 세웠다 하더라도 천주교 선교사들의 여성 교육관은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여성 교육의 범위를 기초 교육의 범주에 제한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국문·한문·산술·역사·지리 등의 과목을 제시하면서도 당시 여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생업에 유용한 청소, 세탁, 유아 교육법, 비단 짜는 일 등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성 여학교는 제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 기관의 효시이다. 가톨릭계 전도 활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학교이기는 하지만 제주 지역에서 여성 교육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