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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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殖産銀行濟州支店 |
영어음역 | Joseon Siksan Eunhaeng Jeju Jijeom |
영어의미역 | Joseon Industrial Bank, Jeju Branch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있었던 금융 기관.
[개설]
총독부령에 의해 1918년 10월 1일 ‘조선 식산 은행’의 설립으로 인해 광주 농공 은행이 같은 날짜로 해산함에 따라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이 명칭을 변경하여 조선 식산 은행 제주 지점이 개설됐다. 8·15해방 이후 한국 식산 은행으로 바뀌어 한국 전쟁 때까지 장기 산업 자금의 조달 및 공급 업무를 수행하였다.
1950년대 제주도의 금융 신용 업무는 일제 시대 설립된 조선 식산 은행 제주 지점과 제주·서귀포·한림·성산포 등지의 금융 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1951년에 한국상공은행 제주 지점과 흥업 은행(1959년 한일은행으로 개칭) 제주 지점이 생겼다.
[설립 목적]
조선 식산 은행은 1918년 산업 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한 특수 은행으로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일제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하였다.
[변천]
주식회사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은 제주 유사 이래 금융 기관으로서는 처음 설립된 것이었다. ‘광주 농공 은행’의 상호명은 주식회사 광주 농공 은행이었으며, 본점의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서내리 4통 1호였다.
설립 목적은 농·공업 개량 발전을 위한 자본대부사업으로 자본 총액은 10만 원으로 설립하여 운영해 왔으며, 제주 지점의 설치는 1911년 6월 29일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으로 등기를 했다. 지점의 위치는 전라남도 제주군 중면 3도리 병문동이었으며, 지배인 주소 성명은 제주군 중면 1도리 7성통 14통 7호 후지하라겐슈[藤原建樹]였다.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이 제주군 재판소에 등기가 되어 제주도 내에서 영업을 하게 된 것이 제주 역사상 첫 은행업의 시초이며 제주 지점 지배인[지점장]은 일본인이었으며, 그 외 감사역 등은 한인이 맡아 운영하였다.
1911년 10월 30일 감사역 중 임병용(任炳龍)을 김기영(金祺永)으로 등기 변경을 하여 한국인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행 본점의 설립 목적이 농·공업 개량발전을 위한 자본 대부인 점을 감안할 때 제주 지점의 목적도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고 당시 제주도의 농업·공업·상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총독부령에 의해 1918년 10월 1일 ‘조선 식산 은행’의 설립으로 인해 광주 농공 은행은 같은 날짜로 해산하고 조선 식산 은행으로 개편되었다.
제주도 지점도 동일자로 조선 식산 은행 제주 지점으로 변경하고 위치도 제주면 3도리 71번지[전 국민 상호 신용 금고 건물 자리]로 옮기고, 지배인[지점장]도 일본인인 고오기겐지죠[慌木健之助]로 바뀌었다. 조선 식산 은행의 사업 목적은 순수 은행업이었다.
1943년에는 조선 총독부 산하 최대의 정책 금융 기관으로 계속 활동했으나 8·15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도입이 소멸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채 소화도 불가능해 미국 대충자금의 일부만 취급하는 등 개발은행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상업 은행으로 변신하여 활동하다가 1954년 제정된 「한국 산업 은행법」에 의거해 저축 은행으로 전환되었다.
조선 식산 은행 취급 업무인 수리 개발, 주정 대금 등은 산업 은행 부산 지점으로 이관되었고, 저축 은행은 주로 제주도 중·소 생산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소 금융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게 되었다.
조선 식산 은행의 업무 전환 때문에 주정 공장 및 이설 공장 등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이에 상공 회의소, 도의회, 제주읍 의회의 건의에 따라 저축 은행 제주 지점에서는 1955년 4월 1일부터 산업 은행 대리점 업무를 개시했다.
저축 은행은 산업 은행이 지정한 여신 관리와 위탁 업무를 맡았으나 실제 설치 목적은 제주도 개발 자금으로 방출된 ECA대충자금의 회수 추진에 있었다. 산업 은행 대리점은 제주 산업 발전을 위한 중계 대부 등을 맡았으며, 제일 은행 제주 지점의 설립기반이 되었다.
[활동 사항]
한국을 식민지화한 후 일본의 유·이민들이 제주성, 서귀포, 성산포, 한림, 추자 등지에 집단 거주하면서 국유지로 된 광대한 전토를 불하받아 어장 및 임항(臨港) 토지로 사용하여 막대한 부를 형성하였고 광주 농공 은행 제주 지점 혹은 조선 식산 은행에서 이윤을 증식하면서 본국으로 송금하였다.
도민들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업체의 고용인으로 전락되었으며 국유지 소유의 증폭으로 우리 농어민이 개간할 수 있는 토지는 점차 줄어들었으며, 화전민의 자유 개간권도 상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