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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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時烈謫居址 |
영어음역 | Song Siyeol Jeokgeoteo |
영어의미역 | Song Siyeol's House of Exi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 1317[칠성로길 3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역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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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 1317[칠성로길 37]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이 적거했던 유허지.
[개설]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은 1689년(숙종 15)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의 적거 기간은 불과 3개월에 불과하지만 귤림서원과 산지천에 있는 경천암에 제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주 지역에서는 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나이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된 송시열은 약 100여 일 동안 산짓골 윤계득의 집을 적소로 정하여 생활하였다. 그러나 남인들이 그를 다시 국문하도록 요청하여 서울로 압송하던 중 6월 7일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그 후 1694년(숙종 20)에 서인이 집권하자 관직이 복구되고 문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제주 유생 김성우 등은 1695년(숙종 21) 2월에 상소하여 송시열을 귤림서원에 배향하였다. 지금 오현단 서쪽 암벽에 새겨져 있는 ‘증주벽립’의 필적은 송시열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황]
현재는 그 옛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