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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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泉書堂 |
영어음역 | Samcheonseodang |
분야 |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문화·교육/교육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성격 | 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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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736년(영조 12)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146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당.
[개설]
1736년(영조 12) 제주목사 이 산지물 동쪽 동산에 세운 서당이다. 제주 전 지역의 선비가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였으며, 김정이 비용을 내어 후진들도 양성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김정을 기리어 김정흥학비를 세웠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번지에 있는 오현단(五賢壇)에 남아 있다. 삼천서당이란 명칭은 산저천(山底泉)·감액천(甘液泉)·급고천(汲古泉)의 세 하천이 흐르는 곳이라는 뜻에서 따왔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가막새미 북쪽, 곧 제주측후소 바로 남쪽 지금의 선일건재사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변천]
1843년(헌종 9)에 제주목사 이원조(李源祚)[1792~1872]가 중수하고 중수기를 지었으며, 1850년(철종 1) 제주목사 이현공(李玄功)[1814~?]이 개건하였다.
학생의 정원은 20명이었으며, 1871년(고종 8)에는 좌학당(左學堂)이 폐지되면서 정원을 40명으로 증가하였다.
[형태]
유생을 기숙시키는 존현당(尊賢堂) 2칸, 삼읍(三邑:제주목·대정현·정의현) 자제를 기숙시키는 강당 8칸, 서민의 자제를 기숙시키는 장랑(長廊) 12칸 등 세 채로 구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