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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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陽洞 |
영어음역 | Samyang-dong |
이칭/별칭 | 소흘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명철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삼양 1동·삼양 2동·삼양 3동·도련 1동·도련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개설]
제주시 동부권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에서 다양한 생활 도구와 곡물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간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도시와 농촌, 그리고 어촌의 생활과 경관이 어우러진 근교 농업 및 주거 지역이다.
[명칭 유래]
19세기 중반까지 소흘리(所訖里)라 불리다가 19세기 말부터 삼양(三陽)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약 120여 년 전 이 마을에 살던 장봉수와 박운경이라는 사람이 서흘개와 가몰개, 그리고 매촌 등 3개 마을을 합하여 양지(陽地)라 부른데서 삼양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나 아직 확실한 근거는 없다.
[형성과 변천]
이 동은 행정동 명칭으로서 5개의 법정동, 즉 북동쪽의 삼양 1동과 북쪽 가운데의 삼양 2동, 북서쪽의 삼양 3동, 그리고 남서쪽의 도련 1동과 남동쪽의 도련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흘개, 웬당개, 지구리, 가몰개, 들은돌, 버렁개, 감은여, 도른드르, 맨돈지 마을 등 여러 개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옛 제주군 중면 삼양리 일부를 제주면 삼양리, 옛 삼양리 일부와 도련리 일부를 합하여 제주면 도련리라 하였다. 1931년에는 제주면이 제주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각각 제주읍 삼양리, 도련리라 불렸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고 종래 25개 리가 40개 동으로 개편될 때 제주시에 편입되어 삼양동과 도련동으로 개칭되었다. 그 뒤 1962년 제주시 40개 동이 14개 행정동으로 개편되면서 다시 행정동인 삼양동으로 되었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해발 고도 약 100m 이하의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대부분 암석 해안이 발달해 있다. 북동쪽에는 측화산인 원당봉(元堂峰)[171m]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한라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음나물내와 동냉이내 혹은 삼수천이 북류하여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현황]
시의 북동쪽 끝에 있는 행정동으로 남북으로 약간 긴 사각형 모양이다. 2006년 12월 현재 면적은 9.52㎢이며, 총 3,826세대에 10,649명[남자 5,406명, 여자 4,2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조천읍, 서쪽은 화북 1동과 화북 2동, 남쪽은 봉개동과 회천동, 북쪽은 바다에 각각 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인구는 미미하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면적 가운데에 밭과 과수원이 약 70%를 차지하며, 대지와 도로 등 도시용 토지는 약 15%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과수원의 비중이 40%를 차지하여 제주시 평균보다 4배나 많은 편이다.
주요 기관은 삼양 초등학교, 삼양동사무소, 한국 농촌 공사 제주 지역 본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소, 제주 농업 협동조합 삼양 지점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삼사석로 주변에는 병원이 있다. 시설로는 삼양수원지, 홍익 보육원과 영아원이 있다.
문화 유적은 종을 엎어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원당봉에 보물로 지정된 불탑사 5층 석탑이 있는데, 이는 원나라 기황후가 왕자를 얻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제주 삼양동 유적, 제주 민속 박물관이 있다.
삼양 검은 모래 해변은 현무암이 풍화되어 형성된 검은 모래가 모래찜질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연삼로가 도련 1동과 도련 2동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며, 삼사석로가 북부를 지나 삼양 1동에서 연삼로와 합쳐 조천읍으로 지난다. 그리고 삼양 검은 모래 해변 근처에서 남북으로 연결된 삼봉로가 봉개동사무소 근처에서 동부 관광 도로와 마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