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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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三姓穴 |
영어음역 | Jeju Samseonghyeol |
영어의미역 | Jeju Samseonghyeol Cave |
이칭/별칭 | 모흥혈(毛興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313[삼성로 22] |
집필자 | 김동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4년 6월 10일 - 제주 삼성혈 사적 제13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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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주 삼성혈 사적 재지정 |
성격 | 신화 유적 |
건립시기/연도 | 미상 |
면적 | 29,647㎡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313[삼성로 22] |
소유자 | 고양부 삼성사 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탐라국의 신화와 관련된 유적.
[개설]
제주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高)·양(梁)·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梁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신화가 전하는 3개의 구멍이다.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건립경위]
제주 삼성혈의 성역화는 1526년(중종 21) 이수동(李壽童) 제주 목사가 혈(穴)의 북쪽에 홍문(紅門)·혈비(穴碑)를 세우고 돌로 담을 쌓아 고·양·부씨의 후손들에게 혈제(穴祭)를 지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1698년(숙종 24)에 유한명(柳漢明) 목사 때 혈의 동쪽에 위패를 모시는 삼을나묘(三乙那廟)[지금의 삼성전(三聖殿)]를 세우게 하였다. 1702년(숙종 28) 이형상 목사 때 삼성묘를 가락천 동쪽으로 이건하였으나 홍수로 인해 다시 원위치로 이전하였다.
1772년(영조 48) 양세현(梁世絢) 목사 때는 외장을 축조하고 소나무를 증식하고 제전을 마련하여 건시대제(乾始大祭)를 봉행하였다. 1785년(정조 9)에는 양경천(梁擎天)의 상소로 ‘삼성사(三姓祠)’라는 사액이 내려졌으며, 고택겸(高宅謙) 교리가 어제제문(御製祭文)을 받들고 와서 봉제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전사청(奠祀廳)이 건립되었고, 1849년(헌종 15)에는 숭보당(崇報堂)이 건립되어 재생(齋生) 교육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사우 철폐령으로 인해 위폐가 철회되었다. 그 뒤 재건 운동으로 1889년(고종 26)부터 전사청, 삼성전 등이 중건되었다.
[현황]
제주 삼성혈은 현재 고양부 삼성사 재단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 제례는 삼성의 후손들이 삼성전에서 매년 양력 4월 10일에 춘제와 10월 10일에 추제를 지낸다. 헌관은 삼성이 돌아가며 맡는다. 12월 10일에는 제주도민이 건시제로 혈단(穴壇)에서 지낸다.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된다.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제주 삼성혈은 제주 고유의 건축물과 제사 모습 등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며,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성소(聖所)이다. 이 유적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벽랑국의 세 공주가 타고 온 나무 상자가 발견된 해안 황루알, 세 신인이 세 공주와 혼인한 혼인지(婚姻池), 이들이 혼인한 뒤 영역을 가리기 위하여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三射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