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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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珍景追慕碑 |
영어음역 | Park Jingyeong Chumo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Park Jingyeong |
이칭/별칭 | 4·3비석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산 19-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희 |
성격 | 추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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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85년 6월 |
관련인물 | 박진경 |
재질 | 화강편마암 |
높이 | 2m |
너비 | 1m 20㎝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산 19-2 |
소유자 | 제주시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제주 4·3 때 죽은 박진경을 기리는 비.
[개설]
아흔아홉골의 제주시 충혼묘지에는 제주 4·3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희생된 군 전사자와 경찰 전사자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원래 이 유해는 사라봉 자락의 사라봉 충혼묘지에 안장돼 있다가 1985년 10월 26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충혼묘지 안의 좌측은 경찰 묘역, 우측은 군인 묘역으로, 1990년 현재 총 639기(군인 494기, 경찰 145기)가 안장되어 있다. 충혼묘지 입구에는 1957년 제주도 공비완멸위원회에서 건립한 한라산공비완멸기념충혼비가 제주경찰서 내에 있다가 옮겨왔으며, 제주도 군경원호회에서 건립한 박진경 추모비가 서 있다.
박진경 중령은 1948년 5월 초, 9연대가 11연대로 바뀌면서 초대 11연대장으로 제주도에 부임했다. 박진경은 부임 초기부터 김익렬 연대장과는 달리 강경 진압으로 치달으며 많은 인명 희생을 초래했다. 박진경은 부임 한 달여 만인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 잠을 자다 부하들에게 암살되었다.
[건립경위]
제주도 군경원호회가 주동이 되어 제주 4·3사건 때 박진경이 행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2년 11월 7일에 세웠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제주시 충혼묘지 입구에서 100m 거리 우측에 세워져 있다.
[형태]
재질은 화강편마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충혼묘지 관리사무소에서 잘 관리하여 상태가 양호하다.
[금석문]
전면
고(故) 육군대령(陸軍大領) 박진경(朴珍景) 추모비(追慕碑)
우측면
이 비(碑)는 당초(當初)에 세운 비(碑)의 비명마모(碑銘磨耗)로 내용식별(內容識別)이 어려워 서기(西紀) 1985년(一九八五年) 6월(六月) 일(日) 다시 세웠으며 원비(原碑)는 비(碑) 앞에 묻었음.
후면
공(公)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밀성대군(密城大君)의 후예(後裔)로서 생지(生地)는 경남(慶南) 남해군(南海君) 남면(南面) 홍현리(虹峴里) 36번지(三十六番地)에서 단기(檀紀) 4253년(四二五三年) 1월 22일(一月二十二日) 출생(出生)하셨다. 부인(婦人)은 남해군수(南海郡守)를 역임(歷任)한 진양정공(晉陽正公) 임환(任煥) 씨의 따님이다. 공(公)이 순직(殉職)하신 후(後) 양자(養子)로서 그 백형(伯兄)인 진용(珍鎔) 씨의 아들 익성(翊妵) 군을 입양(入養)하였다.
공(公)은 진주고보(晉州高普)를 졸업(卒業)하고 이어 일본(日本) 오오사카(大阪) 외국어대학교(外國語大學校) 영어과(英語科)를 졸업(卒業)한 후(後) 우리나라 광복(光復)과 더불어 국군(國軍) 창설(創設)의 주역(主役)으로 일익(日益)을 담당(擔當)하여 헌신(獻身)하고 국방예비대(國防警備隊) 총사령부(總司令部) 인사국장(人事局長)을 역임(歷任)한 후(後) 11연대장(十一聯隊長)으로 취임(就任)과 동시(同時)에 육군대령(陸軍大領)으로 승진(昇進)하여 제주도(濟州道) 공비소탕(共匪掃蕩)에 불철주야(不撤晝夜) 수도위민(守道爲民)의 충정(忠情)으로 선두(先頭)에서 지휘(指揮)하다가 불행(不幸)히도 단기(檀紀) 4281년(四二八一年) 6월18일(六月十八日) 장렬(壯烈)하게 산화(散華)하시다.
이에 우리 삼십만(三十萬) 도민(道民)과 군경원호회(軍警援護會)가 합동(合同)하여 그 공적(功績)을 기리기 위하여 단갈(短碣)을 세우고 추모(追慕)의 뜻을 천추(千秋)에 기리 전(傳)한다
단기(檀紀) 4285년(四二八五年) 11월(十一月) 7일(七日)
제주도민(濟州道民) 급(及) 군경원호회(軍警援護會) 일동(一同)
[의의와 평가]
제주 4·3에 있어 박진경은 강경 진압 작전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충혼묘지에 박진경의 추모비가 있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제주 4·3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박진경 추모비가 제주시 충혼묘지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