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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14
한자 朴榮淳
영어음역 Park Yeongs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173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1734
성별
생년 1916년연표보기
몰년 1947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대표경력 단국중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어릴 때 2년 동안 한문을 배우고 1926년 8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금구소학교(金甌小學校) 야간부를 졸업하였다. 화하류전기제작소(靴下留電氣製作所)에서 공원으로 일하던 중 일본 공산당 당원 김귀영(金貴榮)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에 공감하였고, 무산 아동에게 항일 의식을 교육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1935년 1월 귀향하였고, 1935년 8월 하귀리에서 강문일(康文一)·김을봉(金乙鳳) 등과 함께 야학을 설치·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 60여 명의 야학 학생들에게 식민지 수탈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의 당위성을 교육시켰다. 또한 이천만가·혁명가·단결가 등의 노래를 가르치는 방법으로 야학 학생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

일련의 항일 활동으로 1935년 5월에 체포되어 강문일·김홍규(金弘奎)와 함께 1935년 10월 1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6년 6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하귀리에 있는 단국중학교 교사로 재임하였으며, 정국이 혼란해지자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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