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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04
한자 朴継崑
영어음역 Park Gyegon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성별
생년 1675년(숙종 1)연표보기
몰년 1731년(영조 7)연표보기
본관 밀양

[정의]

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가계]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려한(朴麗漢)이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제주목의 서리를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0년(숙종 36) 12월 파직되어 떠나는 제주목사 최계옹(崔啓翁)[1654~?]을 따라 진상품을 싣고 출항하였다가 파선되어 겨우 사서도(斜鼠島) 근처에서 표착하였다.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에 부모와 이별하는 글 ‘애아부모 기호영결 천기긍령 표송부가 축천배곡(哀我父母 幾乎永訣 天其矜怜 標送父家 祝天拜哭)’을 쓰고 하늘에 축원하며 아버지에게 부치니 해류를 타고 흘러 그 거리가 9백리나 되는 옹포리 포구에 표도하여 왔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 판자 조각을 가지고 관청에 보고하였으며 제주목사 백시구(白時耈)[1649~1722]가 배 세 척을 사서도에 보내어 구명하니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감천의 효라 하였다.

1720년(숙종 46) 6월 숙종이 승하하자 수년 전 제주 기민을 위해 구호곡을 보낸 임금의 은혜를 갚기 위해 1720년 10월 제주도민을 인솔하여 능역(陵役)에 참가하여 일하면서 숙종의 은혜에 대해 노래 불렀다.

숙종의 비인 인원왕후[1687~1757]가 이를 듣고 가상히 여겨 별감을 보내어 제주 출신 능역군을 위로하고 여러 물건을 하사하였다. 1724년(경종 4) 1월 제주향교가 소실되어 가락천 동쪽 옛 터로 옮겨 세울 때 쌀과 소를 내놓아 역사를 도왔다.

박계곤의 막내딸 박씨는 이항춘(李恒春)과 결혼한 지 몇 년 안 되어 과부가 되었으나 평생 수절하여 세인이 정절부인이라 불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박씨의 천비 고소락(高所樂)은 죽성동 박씨 부인의 절행에 대한 소문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박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물 나르는 종으로 삼아 주길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행적들이 알려져 1794년(정조 18) 제주목사 심낙수(沈樂洙)[1739~1799]에 의하여 박계곤은 효자, 그의 딸 박씨는 열녀, 그녀의 몸종 고소락은 충노로 정려되었다. 이항춘의 처 박씨의 열녀 비석과 충비 고소락의 비석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120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63년(영조 39) 이명운(李明運) 제주목사에 의해 이 사실이 보고되고 1764년에 제주위유어사 이수봉(李壽鳳)[1710~?]에 의해 조정에 알려졌다. 1794년 심낙수박계곤의 손자 박중환(朴重煥)에게 벼슬을 주고 효자·열녀·충노로 정표하고 박씨삼정문(朴氏三旌門)이 내려 자손이 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남아 있다.

1771년(영조 47) 제주에 유배 온 권진응(權震應)[?~1775]이 비문을 지었고, 1841년(헌종 7) 제주목사 이원조(李源祚)[1792~1872]가 『박효자전(朴孝子傳)』을 지었으며, 심낙수가 「효열충정려기(孝烈忠旌閭記)」를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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